3장에 대해서(9절~11절 요약)

 

9-11절 요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외적인 번성을 통해서 스스로 믿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으나 이러한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내적으로는 폭력, 강도질 등에 의해 혼란이 생기고 공동체가 불가능하게 되며 평화가 깨진다.  공존성이 결여된 것이다.  그러나 폭력과 강도질을 휘두르던 사람들도 결국 이들은 똑같이 폭력과 강도질을 당하게 될 것 이라는 것 즉,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여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며, 모든 기초가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12-15절 개관


   12절과 13절의 경계문제 – ‘이 말을 듣고 야곱 가문에게 똑똑히 일러라’라는 구절을 공동번역에서처럼 ‘딩구는 사마리아 사람들아’에 연결시킬 수도 있고 아니면 따로 떼어서 그 뒷절에 연결시킬 수도 있다(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이 구절 위의 내용은 아모스가 사마리아 사람들을 심판하는 내용임을 고려할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러한 말씀을 전하도록 위탁받는 대상이 될수는 없다.  또한 분사문으로 주어를 시작하는 것은 많지가 않다.  따라서 두 구절은 분리시키는 것이 좋다.




12절


   나 야훼가 선고한다.  양이 사자에게 잡아 먹혀도, 목자는 남은 두 종아리뼈나 귀 한 조각만이라도 건져 내지 않느냐?  이스라엘 백성도 그와 같이 남으리라.  멋진 침대, 화려한 잠자리에서 딩구는 사마리아 사람들아,


   。“이스라엘 백성도 그와 같이 남으리라” – 심판을 받지만 구원 받는 사람이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아모스는 이러한 식으로 얘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려한다.  (참고 : 목자가 양을 치다가 외부에 의한 공격으로 양을 잃게 될 경우 목자는 주인에게 이것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양의 종아리뼈나 귀 한조각 등을 가져간다.  이처럼 이스라엘도 구원을 받기는 받지만 그것은 모든이의 구원이 아니며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은 후 그 증거용으로 조금만 남는 정도로 구원을 받아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증거용으로 남는다는 것은 과거에는 잘 살았었는데 지금 남은 사람은 이 사람들 뿐이다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남는다는 것이다.   즉 옛날 것을 기억케 하는 나머지로서의 구실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공격을 받고 잔여로서 남게 되는 구원을 말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도시는 외적인 폭력에 의해 망하게 될 것이고 남은 자는 패망의 상징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야훼로부터 영원히 보호를 받고 구원을 얻으리라는 안이한 생각을 역설적으로 뒤집고 있다.




13절


   이 말을 듣고 야곱 가문에게 똑똑히 일러라.  – 주 만군의 하느님 야훼의 말씀이시다. 


   §원문 번역 : “야곱의 가문을 거스려서 듣고 증거하여라” 또는 “들어라, 그리고 야곱 가문을 거스려서 증거하여라”


   。앞구절의 “야훼의 말씀이시다”와 비교해 볼 때 이는 본문 비판적으로 보나 문헌 비판적으로 보나 후대에 들어갔을 것으로 보여진다.  “주 만군의 하느님”이라는 내용은 앞의 “야훼의 말씀”이라는 것을 근거로 해서 이 말씀이 틀림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부연한 것이며 ‘증거하여라’란 법적인 차원에서 증인으로 나서라는 뜻이다.




14절


   나를 거슬러 죄짓는 이스라엘을 찾아 오는 날. 내가 베텔의 제단에 벌을 내리리라.  그 제단의 뿔들을 때려 부수어 땅바닥에 흩어 버리리라.


   。‘이스라엘을 찾아오는 날’ – ‘찾아온다’는 ‘דꙍ꘱(paqad)’이라는 용어가 쓰이며 이 용어는 단순히 방문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잘못을 살피고, 감추어진 죄를 드러내기 위해 방문하고 찾아 온다는 의미이다.


   。2열왕 23장에 보면 요시아 개혁을 하면서 베텔에 있는 우상과 제단을 모두 때려부수는 내용이 나온다.  14절은 이 사실을 거꾸로 아모스 예언에 삽입함으로써 결과에 의한 예언을 한 것, 즉 현재 요시아때 체험하는 사실을 과거에 역투영하여 그 권위를 과거에까지 소급시키는 것이다.  후대에 이 구절을 넣음으로써 잘못된 경신례가 지니고 있는 영향을 나타내 보이려 한 것이다.


   。‘제단의 뿔들을 때려 부수어’에서 ‘제단의 뿔’이란 1열왕 1,50; 2을 보면 성전의 성역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사마리아 사회가 야훼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미래가 없어지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이 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들이 믿었던 외적인 제도, 사회와 경신례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15절


   ‘겨울 별장, 여름 별장을 쳐부수리니, 상아로 꾸몄던 집들이 자취없이 사라지고 고래등 같던 집들도 간 데 없이 되리라.’  – 야훼의 말씀이시다.


   。‘겨울 별장, 여름 별장, 상아로 꾸몄던 집들’ – 사마리아가 에집트, ‘ashdod과의 무역을 통해 그만큼 화려하게 살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12 – 15절 요약


   경신례 차원이나 사회의 차원에 있어서 야훼의 개입은 결정적인 것이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며 그 규모나 범위로 보아서 엄청날 것이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만군의 하느님’이라고 할 때는 전통적으로 보아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들을 위해 싸웠던 야훼를 생각케 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심판으로서의 개입은 후대의 해석가 입장에서 볼 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결국 베텔의 제단에 벌을 내렸다는 것으로 재해석된다. 이렇게 본다면 9-15절이 지금과 같은 꼴을 갖출 때에는 독립적으로 있었던 사회의 부패성을 신앙의 차원에서 재해석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근거는 야훼의 말씀이라는 데 있다.이미 전통적으로 내려 오던 아모스의 심판 속에서 야훼의 말씀이 거론되었기 때문에 후대에 경신례적인 차원에서 재해석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야훼의 말씀이라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후대에서까지 늘 폭력이나 강도질, 평화의 부재등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재해석 차원에서 결국 경신례로 옮겨가게 되고 더 나아가 믿음에 가지 결부된다.  또한 이것은 ‘ashdod이나 에집트에서 알려질 만큼 명백한 부패라는 것과 감출 단계는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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