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에 대해서(1절~5절)

 

4장에 대해서 


   4장은 1-3절, 4-5절, 6-12절, 13절로 나눌 수 있다.  4-5과 6절 이하를 떼어서 생각해야 하며 6절에서 12절까지 끝내고 13절에서는 6-11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나 테마가 반복되지 않고 전혀 다른 테마로 되어 있다.  특별히 13절에서는 아모스 예언에 3번에 걸쳐 나오는 하느님 찬미의 내용이다.  이것을 통해 야훼가 어떤 분이신지를 창조의 차원, 우주적 차원 등으로 표현한다.  13절은 내용이 앞의 것과는 다를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앞의 것들과 연결시킬 수 없다.  이것을 볼 때 여러 사람이 썼을 것이라고 짐작을 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썼더라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연관된 테마를 이용할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섞여 있다는 것을 볼 때에는 청중들은 여러 형태의 청중들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사람으로부터 나온 텍스트가 혼재해 있기 때문이다.




1-3절


   바산 풀밭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어라.  사마리아 언덕에서 노니는 여인들아, 남편을 졸라 술을 가져다 마시며 힘없고 가난한 자를 짓밟는 자들아, 주 야훼께서 당신의 거룩하심을 걸고 맹세하신다.  너희를 갈고리로 끌어 내고 너희 자식들을 작살로 찍어 낼 날이 이르렀다.  무너진 성 틈으로 하나씩 끌어 내다 거름더미에 던지리라.  – 야훼의 말씀이시다. 


   。‘바산’이란 요르단 강 동쪽, 사해 북쪽의 넓고 비옥한 지역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여인이 남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 여인들이 똑같이 힘없고 가난한 자를 짖밟는다는 것이다.


   。“주 야훼께서 당신의 거룩하심을 걸고 맹세하신다”에서 맹세한다는 표현은 주로 신명기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복을 내리시면서 하시는 표현이다.  “거룩하심을 걸고”는 확고하다는 것과 더불어 그 깊이가 굉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사회의 부패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 퍼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벌은 외국인의 침략 등으로 인한 외적인 패망을 전제로 한다(무너진 성).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그러한 여성 조차 이러한 것을 저지른다는 것은 그 부패가 내적으로 매우 깊다는 것을 나타낸다.  현대에도 신관에 대한 정립이 없으면 사회적인 부패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겠다.



4-5절 개관


   4-5절에서는 ‘경신례에 관한 테마’인데 내용으로 보아서는 경신례를 어떻게 이행해야 하겠는가를 복수형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한 경신례를 이행하라고 얘기하면서도 그 경신례에 대한 평가를 한다. (비슷한 텍스트 : 레위 10,22-25; 신명 4,4-8 참조.) 또 다른 특징은 보통 경신례를 이행하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서인데 여기에서는 경신례를 이행하되 목적은 죄를 짓기 위한 것이다.  즉 전래된 경신례에 관한 여러 가지 말씀과는 전혀 동떨어진 얘기이다.  이 말씀은 풍자적인, 야유하는, 조롱하는 전체의 특성이 있는데 그 특성을 살리면서 거기에 사용된 전승된 테마는 경신례에 관한 것이다.  5절끝의 ‘너희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냐’에서는 경신례를 이행할 때에는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우선해야 하는데 거꾸로 자기의 개인 욕심이 우선하는 가치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4절 첫부분이나 5절 끝부분에는 경신례와 상관없는 인간의 욕심을 통해서 경신례 테마를 적용함으로써 일종의 풍자(야유, 조롱)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서 이것은 형식으로 보아서 굉장히 짜여진 것이며 심판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볼 때 아모스 예언자가 직접 말한 것이라고 본다.


   4-5을 문학의 형태로 본다면 제관계적 율법을 빙자한 풍자적인이다. 그런데 아모스는 그런 요소들을 이용해서 4-5에 연결시키면서 결국은 이스라엘에게 꾸중을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4절 


   베델에 가서 죄나 지어라.  길갈에 가서 실컷 죄나 지어라.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드리고 사흘마다 십분의 일세를 바쳐 보아라. 


   。‘가서 죄나 지어라.’ – צꚃ꘵ 동사가 쓰인다.  베델이나 길갈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성소인데 그런데 거기 가서 죄를 지으라고 할 때에는 결국 하느님 대전으로 나아가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텔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8킬로미터 정도이다. 길갈은 베텔에서 동남쪽으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길갈에 가서’는 경신례의 차원에서는 기술적인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성소에 가는 전례행사까지도 상기시키는 배경이 있는 동사이다.


   。‘아침마다… ’라는 표현은 매번을 뜻하기 보다는 ‘경신례를 이행하기 위해서 성소에 온 것이 아침이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호세 4,13; 8,13을 보면 희생제물을 즐겨 바친 까닭은 이 제물을 바치고, 남은 고기를 나누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십분의 일세’에 대해서는 창세  28,22을 보면 베델에서 야곱이 십분의 일을 바치는 내용이 나오며 신명기에 의하면 십분의 일을 기름으로 바칠 수 있었다.  신명 12, 16.23을 보면 된다.  그리고 1사무 8,15.17을 보면 동물(조그만 소)도 거기 바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왕의 권한으로 생각한다. 신명 12,6.11.17; 14,26을 보면 십분의 일세를 바치고도 거기서 축제를 지낸 것을 볼 수 있다.




5절


   누룩 든 빵을 감사제물로 살라 바치고 자원제물을 수선스럽게 드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가 즐겨하는 짓이란 고작 이런 것 아니냐?  – 주 야훼의 말씀이시다.


   。감사제물(רꖪꙍ, qater)은 그냥 제물이 아니라 ‘살라바치는 성격을 띤 제물’이다.  호세 4,13; 11,2을 보면 희생제물과 감사제물이 병행해서 나온다.  물론 희생제물의 비계를 살라바치지 않았을까?  5b에서는 ꔮꕘꔣ(’ahab)이라는 동사가 나오는데 ‘너희들이 원하는 것’(너희들이 좋아하는 것 : 감정적인 의미이고 많은 경우에 남녀의 감정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제사를 갖추되 자기 욕심대로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4-5절의 배경은 경신례의 장소인 사마리아, 베델 , 길갈이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며 거기에 상응하는 해석은 5b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죄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신례를 이행하되 개인의 욕심을 따라서 하는 그런 경신례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성소에 가서 결국은 생명을 보장받거나 약속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죄’가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레위 5,4을 보면 경신례를 이행하면 생명을 얻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전승된 제사와 생명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마리아, 베텔, 길갈에서는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하느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비판을 하되 바로 그것이 사회에 대한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경신례의 문제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 성격을 풍자적으로 얘기해서 경신례, 성소자체가 경신례를 이행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그것과 어긋나는 것을 얘기한다.  정말 죄를 지으라는 뜻이 아니라 죄를 지을 수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는 것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해서 신학적으로 발전시켜 생각해 본다면 그 앞에 2-3장을 이어서 죽 나온 사회비판, 사회 부도덕 등이 없어지지 않을 경우에 경신례의 가치가 어디있느냐를 반성케 하는 대목이다.  또 그것을 반성케하되 어디를 행해서 하느냐 하면 앞으로 있을 사회의 멸망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예가 된다.  그래서 이런 믿음의 공동체도 ,하느님을 따른다고 하는 제도적인 모든 공동체에 다 해당되며 개인으로 국한되어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럴때에 경신례를 이행하는 것은 바로 경신례가 이웃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점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전락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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