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신유년이여!

 

달릴 길을 다 달리고 이제는 그분께서 주시는 상급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황사영 일행은 박해자들의 손에 육신을 내 맡겼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해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었다. 신유년에 피를 흘린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네 이놈! 선왕께서 너를 총애하여 높은 관직에 등용하려 하였거늘 그래 네놈은 이 나라를 외세에 팔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단 말이냐?”




“나는 이 나라 이 백성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당쟁에 의해서 백성들이 피폐해지는 것을 바라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이들을 대역죄인을 몰아붙여 살해하는 당신들의 만행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소. 당신들이 천주학을 사학으로 규정하여 단죄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당신들의 감정이 숨어있었소. 사람들은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천주님을 속일 수 없는 것이오.”




“여봐라! 뭣 들 하느냐! 저놈의 입에서 헛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매우 쳐라! 이놈들은 백성을 현혹하는 사학을 퍼트리려고 이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 놈들이니라.”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튕겨 나갔지만 그는 결코 굽히지 않았다.




“천주님께서는 알고 계시오!. 천주님께서는 알고 계시오!”




이땅의 젊은 지식인 황사영! 그는 그에게 주어질 부귀영화를 버릴 수 있을 만큼 천주님을 사랑했던 행동하는 신앙인이었고 이 나라 백성들을 사랑하는 신앙인이었다. 그는 다른 어떤 이들보다도 더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결코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 앞에서도 더욱 당당히 조정의 잘못과 천주교의 정당함을 역설하였다.


조정에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결코 황사영의 말을 그렇게 흘러 보내지는 않았을텐데.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람년 그렇게 아까운 인재를 형장으로 내 몰지 않았을텐데.




황사영 알렉산델은 황심 토마스, 김한빈 베드로, 옥천희 요한 등과 함께 12월 10일 참수 치면하여 순교의 영광을 안았다.




신유년의 참담한 박해는 주문모 신부의 자수와 처형, 그리고 황사영의 백서 사건이 해결되면서부터 진정되는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왜냐하면 조정에서도 이제 박해로 인해 동요된 민심을 수습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또한 주문모 신부의 처형사건이 국제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등의 현한에 대처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동요된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로서 “토사교문”을 발표하였다.




“임금의 말씀이 이러하다. 하늘과 영광스러운 조상들이 우리나라를 은밀히 보호하심으로 악의 뿌리가 뽑히고 그 으뜸가는 두목들이 마침내 쓰러졌으므로, 온 조정과 나의 백성에게 그것을 알린다. …그들은 제사 드리는 것을 다만 헛되고 쓸데없는 일로 생각하고 …몇몇 몰락한 양반들이 정부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무뢰한들과 결탁하여 사회 여러 계급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문란케 하고 모든 관습을 타락시켰다. …그대들은 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모두 선으로 돌아와 덕을 닦는데 힘쓰라.…”




그러나 이 토사교문은 신유박해의 종식을 알리는 문서였지만 이 문서가 존재하는 한 어느 때나 천주교를 박해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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