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환

 

박중환은 경기도 광주의 실촌(實村)에서 양반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그가 자라난 환경과 행적이 어떠했는지, 어떤 경유로 입교하게 되었는지는 기록상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훗날 배교함으로써 흥양(興陽)으로 유배형을 당한 그의 동생 박윤환(朴允煥)이 1789년경에 윤유일(尹有一․바오로)에게서 처음으로 천주교에 대하여 배웠다는 기록이 나타날 뿐이다. 그러므로 형인 중환도 이 때쯤 천주교를 들어서 알고 이를 신봉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라 생각된다.


  입교한 후 중환이 영세를 하였다는 기록은 없으나, 그는 매우 열심히 천주교를 신봉하고 교리의 본분을 지키면서 신앙심을 확고하게 다져 나갔다. 그러던 중 신유 교난이 한창일 무렵에 배교자들에게 밀고되어 고향의 교우들과 동생 윤환과 함께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우선 광주의 관아로 압송되어 관장 앞에서 여러 차례 신문을 받고 고문을 당한 후, 다른 교우들과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때 그의 동료들은 마음이 약해져 배교할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므로 서울에 도착되어서는 자신들의 신앙심을 굽히는 말을 하여 사형을 면하고 멀리 유배형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중환은 포청에 이르러서도 용기를 잃지 아니하고 동료들 중에서 가장 깊은 신앙심을 나타내었다. 그의 꿋꿋함은 특히 뛰어났으며, 이에 그는 여러 차례나 문초를 당하고 혹독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포장은 자신의 의도가 통하지 않는 데 화가 나서 심하게 그를 매질하도록 하고는 옥에 가두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때 그가 받은 형벌은 그의 육체로 지탱하기에는 너무 심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장형(杖刑)으로 인하여 옥에서 순교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니, 이 때가 1801년 5월 30일(음력 4월 18일)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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