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현(프란치스꼬)

 

  이보현(프란치스꼬)은 내포(內浦) 지방 덕산(德山) 고을 황모실(현 충남 당진군 우덕면)의 부유한 양민 집안에서 1768년(영조 39)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는 꿋꿋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동무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점이 있었다. 일찍 아버지를 잃었으므로 그는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모든 욕심을 마음껏 만족시켰으며, 이에 따라 성격도 비뚤어져 아무도 그를 억제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24세에 이르러 황 심(黃沁․토마스)으로부터 천주교를 배워 입교한 후, 오래지 아니하여 나쁜 버릇을 고치고 본성을 억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변화된 그의 조용하고 단정한 처신은 이제 모든 이를 감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나이가 들어 결혼할 시기가 되었으면서도 프란치스꼬는 그러한 마음을 조금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을 권유하는 모친에게 순종하기 위하여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의 열심은 날로 더하여졌고 보속(補贖)과 고행에도 열중하였다.


  얼마 동안 고향을 떠나 산중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나물만 먹고 살며, ‘천주를 섬기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금욕을 실천하던가 순교함으로써 목숨을 바치던가 해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천주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 방법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순교에 대한 열망을 키워 나갔다.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고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프란치스꼬는 그것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자기 가족과 동네 교우들을 격려하기에 열심이었다. 한때는 주문모 신부를 2개월간이나 모시고 박해를 피하기도 하였다. 그는 날마다 친지들에게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하며, 신앙을 고백하고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권하였다.


  자신이 오랫동안 무사하지 못할 것을 미리 안 그는 어느 날 술을 많이 담그라고 이르며, ꡒ이것은 마지막 잔치를 차려서 온동네를 대접하려는 것이니 빨리 해야 한다ꡓ고 말하였다. 과연 이틀 후에 포졸들이 나타나 그에게 ꡒ네가 천주교인이냐?ꡓ고 물었다. 그는 ꡒ나는 천주교인일 뿐만 아니라 이틀 전부터 당신들이 잡으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소ꡓ하고 대답하였다. 그런 다음 포졸들을 후히 대접하고 나서 체포되었다. 관청으로 압송된 후 관장의 신문과 프란치스꼬의 대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ꡒ네가 천주교인이냐? 그리고 고향이 어디냐?ꡓ


  ꡒ저는 천주교인이며 덕산 사람입니다.ꡓ


  ꡒ네 선생은 누구이고 공범자는 누구누구이며 어떤 책을 가지고 있느냐?ꡓ


  ꡒ제 선생과 동교인(同敎人)들은 제 고향에 있습니다. 책으로 말씀드리자면, 몇 권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모두 중요한 내용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사또께 바칠 수가 없습니다.ꡓ


  ꡒ도대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그 책을 내게 보일 수 없다는 말이냐?ꡓ


  ꡒ그 책들은 만물의 대군(大君)이신 천주님의 말씀을 적은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또의 손에 맡길 수 없습니다.ꡓ


  관장은 이러한 그의 대답을 듣고는 기분이 상하여 혹독한 매질을 시킨 후 다시 옥으로 데려가도록 하였다. 그런데 감사는 이 사건에 대한 통지를 하고 프란치스꼬를 그가 태어난 출생지로 넘기라고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해미(海美)로 이송되었는데, 그 당시 해미의 영장(營將)은 두 고을을 맡아 보고 있었다.


  프란치스꼬가 해미 영장 앞으로 끌려가자, 영장은 그를 배교시키고, 밀고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신문하였다.


  ꡒ무슨 이유로 네 부모와 조상들의 산소를 버리고 5백리나 되는 다른 고을에 가서 살았으며, 또 어찌하여 그 고약한 종교를 따름으로써 국왕이 금하시는 짓을 하느냐?ꡓ


  이에 그는 ꡒ임금님과 관장들이 알지 못하는 성교(聖敎)를 어찌하여 그렇게 모욕하십니까? 사람의 기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의 기원은 그들을 태초에 창조하신 천주로부터 이루어진 것인데, 어떻게 우리의 대군(大君) 대부(大父)이신 천주를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ꡓ라고 반문하면서 창조주이신 천주를 공경해야만 한다고 설명하였다.


  영장은 ꡒ국왕과 관장들이 무식하다고 하니, 그래 그분들이 너만 못하단 말이냐? 그리고 또 무엇 때문에 외국의 도(道)를 따른단 말이냐? 그 도리가 옳은 것이라면 너만 못하지 않은 국왕과 관장들이 그것을 신봉할 것이다. 너는 근본을 무시하는 대역 죄인에 지나지 않는다ꡓ라고 한 다음 형리들을 가까이 오라고 하여 갖가지 형틀을 준비시키며 ꡒ모든 것을 숨김없이 고백하라ꡓ고 성난 말투로 외쳤다.


  그러나 프란치스꼬는 이를 거절하고 형벌을 받으면서 ꡒ어느 곳에나 선생과 제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대면 저처럼 다루실 것이니, 제가 죽을지라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ꡓ라고 굳은 의지를 표명하였다. 성이 잔뜩 난 영장의 부추김을 받아 형리들은 더욱 잔인하게 여러 번 주리를 틀었으나 헛일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고문을 한나절 이상이나 가하여 프란치스꼬는 여러 번 까무러쳤지만 굴복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에게는 큰 칼이 씌워지고 다시 옥으로 이끌려 가게 되었다. 비록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었지만 마음은 만족스럽고 기뻐서 기도를 드리며 함께 갇힌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가 늘 하던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수난의 신비를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두번째 신문 때 영장은 처음부터 무서운 형구를 늘어놓고 그에게 말하였다. ꡒ이번에는 네가 피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을 고백하고 천주를 배반하라.ꡓ 그러자 프란치스꼬는 ꡒ왜 그런 말씀을 또 하십니까? 신민(臣民)이 자기의 임금임을 배반하면 그에게 벌을 주십니까, 상을 주십니까? 사또께서는 임금님의 녹을 받으시니 저를 법대로 다스리십시오ꡓ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말로 꿋꿋하게 버티었다. 이렇듯 끈기가 있는 태도에 몹시 놀란 영장은 이제 감사에게 보고를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며칠 후 감사는 프란치스꼬가 아무 것도 고백하지 않겠다면 매를 쳐서 죽이라는 답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진영(鎭營)에 끌려 나가 잦은 고문을 당하였다. 마침내 그에게서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게 되자 영장은 그에게 선고문(宣告文)을 내주었다. 그는 기쁜 표정으로 그것에 서명을 하였으며, 이를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서 서로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한다. 다시 옥으로 끌려 간 그는 다음날 사형수에게 주는 음식을 먹으로 순교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였다.


  망나니들은 장터에서 그를 조리돌린 후 장형(杖刑)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각기 거적을 앞치마 모양으로 앞에 두르고 오랫동안 힘을 다하여 프란치스꼬를 매질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마지막 숨을 거두지 않았다. 이에 망나니들은 그를 자빠트려 놓고 몽둥이로 그의 국부(局部)를 때려 순교하도록 하였으니, 이 때가 1801년 12월 15일로 프란치스꼬의 나이 27세였다. 며칠 후 교우들이 그의 시체를 거두었는데, 그 얼굴은 아주 생생하고 웃음을 띄고 있었으며, 이러한 그의 모스을 보고 여러 외교인들이 입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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