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알렉스)

 

김시우 알렉스는 시우재라고도 하는 연산(連山) 김氏이고 청양고을의 양반집에 태어났다. 성품이 착하고 어질어 뛰어난 열심으로 신자본분을 지켰으나 오른 쪽 몸이  반신불수로서 살림살이가 몹씨 가난하여 장가도 들 수 없었다. 그는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며 교우들의 애긍시사를 받아 생명을 부지해 나갔다. 제법 학식이 있고 재간이 많은 그는 오른손으로는 글씨를 쓸수 없었으므로 왼손으로 서책(書冊)들을 베껴 그것으로 잔돈푼이나 얻어 썼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교우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많은 외교인들을 가르쳐 입교시켰다. 그래서 그 지방에서는 신심과 학식으로 평판이 높았었다. 그도 교우들을 따라 노래산(老萊山)으로 가서 부활축일에 교우들이 잡히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자기는 붙잡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울기 시작하였다. “어째서 우느냐?”고 포졸들이 물으니, “나도 천주교 신자인데 병신이라고 잡아가려고 하지 않는군요,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아아! 네 소원이 그렇다면 같이 가자”고 포졸들이 말하니 그는 기쁜 낯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경주진영(慶州鎭營)에 끌려나가 병신의 몸으로도 여러번 형벌을 당해야 했는데 그의 항구한 마음은 관원들조차 칭찬하게 되었다. 대구로 이송되어 처음에는 영장(營長)앞에 다음에는 감사(監司)앞에 끌려 나갔다. 감사가 그에게 물었다. “네가 예수를 흠숭(欽崇)한다는데 그 예수라는 자가 저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의 매에 죽은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냐? 다른 사람에게 맞아 죽은 사람을 흠숭할 이유가 무엇이며 그의 죽음이 어째서 그리 훌륭하단 말이냐?” 김시우 알렉스는 대답하였다. “9년동안 장마가 졌을적에 하우(夏禹)임금님은 나라를 끊임없이 두루 다니시며 백성을 구하시려고 갖은 일을 다 해보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이나 자기 궁궐 대문앞을 지나치면서도 들어가길 거절하셨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훌륭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컨대 자기 신민(臣民)의 물질적 구원 밖에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하우(夏禹)임금님이 고금을 통해 이름을 날리고 계신 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 만방의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시려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렇듯 은혜를 베푸사 이를 섬기지 않는 자가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監司님도 예수께서 감사드리고 그분을 흠숭하고 천주교에 들어오셔야 합니다.” 監司는 창피를 당하여 성이 발끈 나서 알렉스의 턱을 부수어 말을 못하게 하고 고문을 더 한층 심하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김시우 알렉스는 끝까지 천주를 증거하여 사형선고를 받았고 자기가 받은 선고에 서명을 한 후에 감옥으로 돌아가 처형의 날을 조용히 가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른 죄수들처럼 짚신을 삼을수가 없었으므로 오래지 않아 수중에 돈 한 푼도 없게 되어 음식을 갖다 주는 여인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게 되자, 이 여인은 그를 나무라며 아무것도 갖다주지 않았다. 형벌로 쇠약해지고 굶주림에 시달려 알렉스는 대구로 이송되어 온지 두 달 가량이 지나 옥에서 숨을 거두니 1815년 5월이나 6월경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그는 불구(不具)와 재간과 재능, 관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변호한 용기, 특히 동정신분(童貞身分)으로 인하여 이 나라 신자들에게 귀한 존재가 되어 이들은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자기들 교회의 영광중의 하나로 쳐 내려온다.





 


이 글은 카테고리: 교회사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김시우(알렉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김시우 알렉스는 시우재라고도 하는 연산(連山) 김氏이고 청양고을의 양반집에 태어났다. 성품이 착하고 어질어 뛰어난 열심으로 신자본분을 지켰으나 오른 쪽 몸이  반신불수로서 살림살이가 몹씨 가난하여 장가도 들 수 없었다. 그는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며 교우들의 애긍시사를 받아 생명을 부지해 나갔다. 제법 학식이 있고 재간이 많은 그는 오른손으로는 글씨를 쓸수 없었으므로 왼손으로 서책(書冊)들을 베껴 그것으로 잔돈푼이나 얻어 썼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교우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많은 외교인들을 가르쳐 입교시켰다. 그래서 그 지방에서는 신심과 학식으로 평판이 높았었다. 그도 교우들을 따라 노래산(老萊山)으로 가서 부활축일에 교우들이 잡히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자기는 붙잡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울기 시작하였다. “어째서 우느냐?”고 포졸들이 물으니, “나도 천주교 신자인데 병신이라고 잡아가려고 하지 않는군요,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아아! 네 소원이 그렇다면 같이 가자”고 포졸들이 말하니 그는 기쁜 낯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경주진영(慶州鎭營)에 끌려나가 병신의 몸으로도 여러번 형벌을 당해야 했는데 그의 항구한 마음은 관원들조차 칭찬하게 되었다. 대구로 이송되어 처음에는 영장(營長)앞에 다음에는 감사(監司)앞에 끌려 나갔다. 감사가 그에게 물었다. “네가 예수를 흠숭(欽崇)한다는데 그 예수라는 자가 저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의 매에 죽은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냐? 다른 사람에게 맞아 죽은 사람을 흠숭할 이유가 무엇이며 그의 죽음이 어째서 그리 훌륭하단 말이냐?” 김시우 알렉스는 대답하였다. “9년동안 장마가 졌을적에 하우(夏禹)임금님은 나라를 끊임없이 두루 다니시며 백성을 구하시려고 갖은 일을 다 해보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이나 자기 궁궐 대문앞을 지나치면서도 들어가길 거절하셨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훌륭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컨대 자기 신민(臣民)의 물질적 구원 밖에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하우(夏禹)임금님이 고금을 통해 이름을 날리고 계신 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 만방의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시려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렇듯 은혜를 베푸사 이를 섬기지 않는 자가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監司님도 예수께서 감사드리고 그분을 흠숭하고 천주교에 들어오셔야 합니다.” 監司는 창피를 당하여 성이 발끈 나서 알렉스의 턱을 부수어 말을 못하게 하고 고문을 더 한층 심하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김시우 알렉스는 끝까지 천주를 증거하여 사형선고를 받았고 자기가 받은 선고에 서명을 한 후에 감옥으로 돌아가 처형의 날을 조용히 가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른 죄수들처럼 짚신을 삼을수가 없었으므로 오래지 않아 수중에 돈 한 푼도 없게 되어 음식을 갖다 주는 여인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게 되자, 이 여인은 그를 나무라며 아무것도 갖다주지 않았다. 형벌로 쇠약해지고 굶주림에 시달려 알렉스는 대구로 이송되어 온지 두 달 가량이 지나 옥에서 숨을 거두니 1815년 5월이나 6월경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그는 불구(不具)와 재간과 재능, 관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변호한 용기, 특히 동정신분(童貞身分)으로 인하여 이 나라 신자들에게 귀한 존재가 되어 이들은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자기들 교회의 영광중의 하나로 쳐 내려온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