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바위

 



    이곳 황새바위는 박해가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감영이 있는 이곳 공주로 잡혀 온 남은 신자들이 모진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당하면서도 하느님을 열렬히 증거하며 죽어간 영광의 순교 성지이다. 내포의 사도 이 존창이 신주소각사건으로 일어난 신해박해 때 이곳에 잡혀와 배교를 강요당했고, 두번째 잡혀와 1801년에 이곳에서 순교했다. 1797년 충청감사 한 용화는 도내의 모든 수령들에게 천주교인들을 모두 체포하여 천주교를 없애버리라는 명령을 내려 많은 신자가 체포되었으나 그들에 대한 기록은 없다. 신유박해(1801) 때 이존창 사도가 순교한 후에 계속해서 순교자가 탄생했다. 특히 병인년(1866)과 정묘년(1867)에 많은 순교자를 합하면 훨씬 많은 숫자일 것이라 추측된다. 천주교인들은 사학죄인으로 취급되어 참수형을 당했는데, 시신들은 제민천에 버려져 금강물이 피로 불게 물들여졌었고 그들의 머리는 황새바위 주위에 있는 소나무에 매달렸다 한다. 황새바위라 불리우게 된 것은 이곳에 있는 소나무에 황새가 서식하여 붙혀진 이름이라 한다.


이곳에서 순교한 분으로 합덕 출신인 손자선 토마스 성인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었다. 그는 독실한 신앙가정에서 태어난 3대째의 신자로 본분을 지키고 있었으나 성품은 유약한 편이었다. 다블뤼 安주교가 자기 마을에서 잡혀간 뒤 덕산 포교들이 이 일대 교우집들을 뒤져 재물을 빼았아 갔는데 관에서는 이 재물들을 되돌려준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는 이 소문을 듣고 찾아가자 군수가 “성교를 믿느나?”고 묻자 “나의 봉교함은 의심할 바 없다”고 말하니 군수는 바로 그를 투옥시켰다. 그는 해미 진영을 거쳐 공주로 옮겨져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는 밤마다 꺼꾸로 매달려 매를 맞고 얼굴에는 인분까지 칠해졌다. 그는 인분을 칠할 때마다 고맙다고 말해 포줄들이 “무엇이 고마우냐?”고 물으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나와 같은 큰 죄인을 위해 피를 많이 흘리시고 돌아가셨거늘 나를 이 모양으로 대접하여 주니 이제야말로 내 죄를 보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고 대답했다.  또 한번은 군수가 배교시키려는 생각에서 ”네 이빨로 네 살을 물어뜯지 않으면 명령에 따라 배교한 것으로 믿고 돌려보내겠다‘고 하니 그는 몇 번을 죽어도 배교할 수 없다면서 두 팔의 살을 한입씩 물어뜯어 피가 흐르게 한 뒤 기절하기도 했었다. 이같은 고문과 유혹을 뿌리치고 순교하니 그의 나이 27세였다. 손자선 토마스는 200주년 103위 시성식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황새바위에서 순교자들을 처형하게 된 것은 당시의 공주감영 관리들이 일반 주민들에게 “천주학을 믿으면 이렇게 죽는다”는 것을 널리 알려 가톨릭의 전파를 막으려 함이었으며 형을 집행할 때에는 맞은 편 공산성에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병풍을 친 모양으로 둘러서서 구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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