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활동(발틱연안지역과 이슬람 교도)

 

선교활동(발틱연안지역과 이슬람 교도)


1)발트연안지역


  12세기에 이르러 교회는 아직 이교 세계로 남아 있던 엘베강 하류지방과 발틱해 동남부 연안 지역의 북부 슬라브 민족의 개종과 핀란드의 복음화에 나섰다. 당시의 선교 활동은 그리스도교 제국의 확대라는 이념의 실천을 전제로 정치 동기와 종교 목적이 서로 밀착된 시대 상황 속에서 전개되었다.인근 그리스도교 국가의 국왕이나 제후들이 영토 확장과 세력 팽창을 위해서 무력을 사용하여 이교 지방을 점령하면서 처음에는 주민의 강제 집단 개종과 함께 교계 체제가 설정되었고 지배 국가의 그리스도교 신자인 국민들이 이주,정착하여 그리스도교화가 촉진,완성되었다.


북부 슬라브 민족의 복음화를 추진한 세속 권력은 신성로마제국,스칸디나비아의 덴마크와 스웨덴,폴란드의 국왕이나 제후,또는 기사 수도회인 튜톤 기사회였다. 그리고 외교인의 개종을 목적으로 십자군 원정이라는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조직적 무력이 동원되기도 하여였다.


아울러 교회의 선교는 12세기의 개혁 수도회인 시토회,프레몬스트라텐시아회,수도참사회와 13세기의 탁발 수도회인 프란치스꼬회와 도미니꼬회가 교황청과 연계하여 수행되었다.12세기 교회의 복음 선포는 독일 북부 지방과 폴란드 사이에 거주하던 포메라니아인,오보드리테인,벤덴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첫째로,1122년에 폴란드 국왕 볼레스라프3세가 포메라니아를 점령한 후에 국왕의 요청으로 밤베르그의 주교 오토가 방문하여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고 1140년에는 교황 인노텐시우스2세가 볼린 교구를 설정하였다. 이후로 마그데부르그 교구에서 입국한 시토회와 프레몬스트라텐시아회의 선교로 12세기 말에 포포메라니아는 그리스도교 지방이 되었다.




둘쨰로 1147년에 독일의 작센 공국,체코,폴란드는 엘베강 북동부 지역의 벤덴인에 대한 십자군 원정에 나섰으나 이는 신앙 전파에 장애 요인이 되었다.그러나 작센의 공작 하인리히가 독일의 그리스도교인들을 이주,정착시킴으로써 벤덴인지방은 그리스도교화하여 벤덴인도 점차로 독일 문화에 동화되었고 독일인과 같은 특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개종하기 시작하였다.




세째로 엘베강 하류 동부 지역의 오보드리테인에 대한 선교 활동은 1126년에 본격화되었으나 강한 저항을 받았다. 그러나 하인리히가 오보드리테인을 정복하고 1178년에 오보드리테의 왕이 개종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지방이 되었다.




13세기에는 폴란드의 북부 및 동북부 지역의 프러시아,리보니아,에스토니아가 그리스도교화 되기 시작하였다. 프러시아의 선교는 1210년경에 교황 인노첸시우스3세의 지시로 시토회가 입국하면서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어욱이 독일의 그리스도교인 농민들의 이주와 함께 튜톤 기사회와 도미니꼬 수도회의 진출과 활동으로 4개의 교구로 구성된 교회로 발전하였다.


리보니아는 1180년에 복음 선포가 시작되어 1225년에 교황 알렉산데르4세가 리가교구를 대교구로 승격시켰다.


에스토니아에는 덴마크 국와 벨데마를 2세가 침공하여 탈린요새 도시를 세운 후에 이곳을 중심으로 선교가 시작되었다.


필란드는 스웨덴의 십자군 원정의 결과로 그리스도 신앙을 수용하였다. 1276년에 아보 교구가 설립되었고 도미니꼬 수도회가 진출하여 핀란드의 그리스도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로써 유럽의 그리스도교화는 완수되었다.


이슬람교도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는 무력 투쟁을 통해서 접톡하게 되었다. 본래 십자군 원정은 셀주크 투르크에게 점령된 성지 탈환을 목적으로 그리스도교 세계는 이슬람교도에게 적의와 호전의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13세기 중엽에 아퀴노의 토마스는 이교도는 이단자가 아니며 전쟁이란 이교도가 신앙의 장애와 그리스도교인의 박해의 요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어날 수 없고 이교도가 강압에 의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수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의 로저 베이컨은 십자군 원정은 잔인하고 무익한 소모전에 지나지 않으며 이교도는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선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아랍인들이 그리스도교에 개종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모국어로 그리스도교 교리를 배울 수 없는 데에 있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십자군 원정에 대한 열성은 약화되고 전교라는 평화적 방법을 통해서 이슬람교도를 설득하려는 자세가 점증하였다.


선교를 통한 이슬람교도의 개종에 대한 새로운 열망은 프란치스꼬회와 도미니꼬회에 의해서 실현되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꼬는 복음이 꾸밈 없이 진지하게 이스람교도에게 선포된다면 그들의 개종이 빨리 이루어진다고 믿고 직접 세 차례에 걸쳐 선교 여행을 떠났다. 특히 1219년에 프란치스꼬는 십자군에 동행하여 에집트의 다미에타에서 이슬람 군주인 카밀라를 설득하여 설교허가를 받고 이슬람교도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페냐포르테의 라이문도는 1240년에 도미니꼬 총장직을 사임한 후에 에스파냐에서 많은 이슬람교 무어인들을 개종시켰다.


13세기 말에 이르러 교황청도 이슬람에 대한 선교를 지원하였다.여기에는 라이몬드 룰의 공헌이 컸다. 라이몬드 룰은 이슬람 세계의 그리스도교 개종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페냐포르테의 라이문도의 권유로 아랍어를 공부하여 숙달하였다.1281년 이후 여러차례에 걸쳐 선교여행을 하면서 이슬람교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아울러 룰은 이슬람에 대한 선교 준비로 수도원에 어학 학원을 설립할 것을 교황에게 제의하였다. 교황 호노리우스 3세는 이슬람의 개종을 위해 파리 대학교에 아랍어 연구를 촉구하였고 1131년에는 비엔 공의회가 룰의 제의를 받아들여 교령을 통해 대학교에 어학부를 설치하도록 지시하여 여러 대학에서 아랍어 강좌가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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