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수도회(托鉢修道會) ,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탁발수도회(托鉢修道會)




  ‘종교재판’이 이단에 대한 부정적 면이라면, 복음적 청빈에서의 탁발(동냥)이란 새 수도회의 출현은 긍적적인 것이었다.  탁발수도회는 여럿이지만 특별히 프란치스꼬회,  도미니꼬회를 2대 탁발수도회라고 한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상적 청빈생활을 하면서 부유한 사람은 무조건 힐책하거나 재산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고 바울로 사도의 말씀대로 재산을 소유하면서 동시에 포기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이들 ‘탁발수도회’는 종래의 수도회와는 다른 형태의 수도회였다.




  첫째,  새 수도회는 수도자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도 사유재산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고, 노동만           으로 살수가 없었기 때문에 동냥에 의지하게 되었다.


  둘째,  수도자의 정주(定主)의무가 사라져 수도자들이 모든 수도원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           으므로 그 행동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세째,  탁발수도회는 도시에 적응된 수도회였다.  그것은 도시에 이단자와 가난한 사람이 많았           기 때문이었고 여기서 도시 선교와 도시 사목이 발전하게 되었다.


  네째,  탁발수도회는 총장을 우두머리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제였고, 그래서 모든 수도원들로부           터 더 효율적인 협력을 얻어낼 수 있었다. 




프란치스꼬회의 창립자인 아씨시의 프란치스꼬는 1811년 경에 아씨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을 자유 분방하게 보내다가 십자군을 따라가던 중 청빈사상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가진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거지처럼 가난하게 살면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주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며 하신 말씀(마태 10,5 이하)을 자신에게 한 말로 이해하고 거기서 자기의 사명을 발견하였다. 


  프란치스꼬는 1209년 ‘작은 형제들’과 함께 교황 인노첸시오3세를 방문하고 교황으로부터 구두로 설교할 허가를 얻었고, 공동체가 발전하자 1221년에 수도 규칙이 작성되었으며, 2년 후에 교황 호노리노3세의 칙서를 통해 인준되었다.




  프란치스꼬회는 프란치스꼬 생전에 벌써 전 서구에 전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녀 글라라를 통해 제2회 즉, 여자 수도회(글라라회)를 세웠고 평신도를 위한 제3회도 세웠다.  프란치스꼬는 그의 단순하고 순진함, 그리스도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겸손으로 중세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교파를 초월하여 존경을 받고 있다.  




  도미니꼬회의 창립자인 도미니꼬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사제가 되었고, 그는 로마를 여행하던 중 프랑스 알비에서 알비 이단을 알게 되어 그들의 개종에 헌신할 결심을 하였다. 


  1216년, 아우구스띠노 회칙을 따라 교황 호노리노3세의 인가을 받았으나 곧 청빈 회칙을 채택함으로써 프란치스꼬회에 이어 제2의 탁발수도회가 되었다.  설교를 최선의 과제로 삼았으므로 자연 학문과 연구에 치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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