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라 학문과 대학(大學) 스콜라 신학

 

스콜라 학문과 대학(大學)




  11세기에 새로운 신학으로 등장한 학문이 바로 스콜라 신학이다.


  스콜라 신학은 그리스도교 계시신앙에 대한 신비를 좀더 깊이 파악하기 위해서 인간의 철학적 사고방식을 활용한 교회 학문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 자세는 아우구스띠노와 보에시우스에 이론적 기원을 두고 있었는데 그들은 계시신앙과 인간이성의 조화를 시도하였고 철학은 신학 연구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였다. 




  9세기 프랑크 왕국의 교육기관들 중에서 특히 주교좌 대성당의 도시 학교에서 학자들은 변증법에 근거하여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의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인간 이성을 통해서 성서와 교부 저서에 나타난 자료를 분석, 연구함으로써 신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신학 연구를 ‘학교의 신학(Theologia Scholae)’이라 불렀고 여기서 스콜라 학문이란 용어가 생겼다.




  스콜라 학문의 시도로 불리는 안셀모는 성서와 교부의 권위에만 의존하던 신학의 연구방법에 이성의 인식이란 새로운 논증을 첨가하였다.  즉 이성의 힘으로 신의 인식이 가능하고 따라서 신앙이 이성에 근거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안셀모에 이어 12세기에는 삐에르 아벨라르와 롬바르디아의 피에트로 등이 신앙문제에서 이성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스콜라 학문을 발전시켰다.


 


  13세기에 이르러 스콜라 학문의 전성기에 이르렀다.


  학자들은 십자군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접촉하였고,  그의 논리학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신학연구방법이 나타났다. 


  프란치스꼬회의 보나벤뚜라는 사물에 대한 철학적 지식을 통해 신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노선은 존 둔스 스코투스에 의해 프란치스코 학파의 전통으로 계승되어 신학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도미니꼬회에서는 알베르또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정립하였고, 알베르또의 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 계시 자료를 체계화하여 ‘신학대전’을 저술하였다.






  12세기에 이르러 볼로냐 대학의 교수인 그라시아노가 삐에르 아벨라르의 변증 논리법을 통해서 후일 ‘그라시아노 법령집’이라고 불린 유명한 ‘모순되는 교회법 조문들의 조화’를 편찬하였다. 


  그는 수집된 법조문들의 모순점을 비교, 비판, 해결하여 논리적으로 새롭게 조화시켰다.  이와 같이 ‘그라시아노 법령집’은 종합과 체계화 작업을 통해서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스콜라 학문의 새로운 신학으로 교회법학의 기원을 이루었다.




  13세기에 이르러 ‘학문’은 종전까지 중심을 이루던 수도원에서 새로 나타나는 대학으로 옮겨져 거기서 학문, 특히 철학과 신학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대학은 교권(敎權) 및 제권(帝權)과 함께 독립적 제3의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학들의 창립된 것이 아니고 기존의 유명한 교회 학교(주교좌 대성당이나 수도원에 부설된 학교)들이 대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교회 학교들이 많은 파리나 볼로냐 같은 도시 학교에 교수와 학생들의 단체가 조직되고, 이 단체는 교회와 국가의 승인을 얻고, 교황으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아 주교로부터도 독립되었다.  이것이 모체가 되어 대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당시의 주요한 대학으로 파리, 볼로냐, 옥스포드를 들 수 있는데,  파리대학은 신학과 철학으로 볼로냐대학은 법학으로, 살레르노대학은 의학으로 유명했다.  대학은 전서구에서 모든 교수와 학생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고, 또 어느 대학의 학위이든 서구 전체에서 인정되었기 때문에 종전의 학교가 ‘특수학교’로 불린 것과는 달리 ‘종합학교’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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