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교구의 조선 교회 담당과 선교사 파견

 

북경교구의 조선 교회 담당과 선교사 파견


  북경의 주교는 윤유일 일행이 돌아간 후에 로마 교황청의 포교성성(布敎聖省) 장관인 안토넬리 추기경에게 두 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구베아 주교는 조선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신비롭게 전하여진 사실을 보고하면서 선교사 한명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말하였다. 아울러 신생 조선 교회의 관리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주교는 조선의 교회가 확획 존속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선교사의 조선 입국을 위한 근거지는 오직 중국, 다시 말해서 북경교구이기 때문에 조선 교회를 관할하는 이는 북경에 주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1791년 2월에 북경의 구베아 주교는 약속대로 마카오 교구 소속인 화웅 도스 레메디오스(Joao dos Remedios)라는 포르투갈 이름을 가진 중국인 오 신부를 조선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과 장소(조선 사신이 북경에서 귀국할 때에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장이 서기로 되어 있어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음)에 조선의 연락 교우가 나타났으나 오 신부가 마치 도착하지 못해 조선 교우를 만날 수 없었다. 오 신부는 북경에 돌아가 사목 활동을 하다가 1793년에 사망하였다. 따라서 첫 선교사의 조선 입국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1791녀에 일어나 ‘신해 박해’ 때문에 북경교구와 조선 교회는 상호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한편 로마의 포교성성 장관 안토넬리 추기경은 1792년 4월에 북경의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 교회의 신자들에게 교황 강복을 전달하면서 조선 교회의 관할권을 북경교구 주교에게 위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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