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삼위일체 대축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십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는 삼위로 현존하시며, 당신의 사랑과 구원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창조주이시며 온 세상의 주인이신 성부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백성들은 구원자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성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의 삶을 살아가며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며, 삼위일체이심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안에서의 삶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이고, 그 삶은 기도하는 삶이며,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입니다. 그래서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영광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드립니다. 성령안에서 살아갈 때, 온전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할 수 있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의 삶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삶으로 드러내게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나에게 성부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의 삶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의 삶이고, 사랑으로 주님과 결합된 삶이며, 이 삶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삶입니다.

 

 

1. 구원자이신 성자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단죄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몸소 인간이 되셨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고, 구세주로 고백하는 이들은 모두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결코 단죄를 받지 않습니다. 이 단죄는 하느님의 심판인데,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단죄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은 누구든지 자신의 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 육적인 삶이 아니라 그 삶을 벗어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께 빚을 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아낌없이 내어 주셨기에 이것을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없는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갚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에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성령의 이끄심대로 의로운 삶으로 주님께 사랑을 갚아 드려야 합니다. 또한 이 삶(육적인 삶을 버리는 삶,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는 삶)이 나를 멸망에서 구원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해 줍니다.

 

2. 자녀를 사랑하시는 성부 하느님

인간은 자기 스스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로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지 말고 겸손하게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겸손하게 하느님 앞에 고개를 숙일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 베풀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들까지도 내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이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이들은 옛 삶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녀들은 육신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자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아빠! 아버지!”라고 하느님을 부르도록 해 주셨습니다. “아빠! 아버지!”는 기쁨에 넘치는 자녀의 외침입니다. 또한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자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절망과 고통 속에서 외치는 탄원과 탄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떤 처지에 있든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삶을 성령께서 이끌어 주십니다.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나를 이끄시어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보게 해 주십니다.

 

3. 구원에로 이끄시는 성령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은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성령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계명을 지킴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합니다. 결코 누구에게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볼 수 있고, 받아들이고, 따릅니다. 주어지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생명과 평화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들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자신들의 영광과 희망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육의 요구에 응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결코 하느님을 등지지 않고, 하느님의 법을 거스르지 않으며, 이웃에 대한 사랑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내어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나해 1-10주일, 연중시기(나해), 웹진,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해 삼위일체 대축일에 1개의 응답

  1. ^*^ 님의 말:

    잔잔한 구름이 해를 가려주어 잠시 평온함을 느껴보는 오후입니다.
    몇일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본인이 신앙을 가지고 싶어 고민하면서 기독교, 천주교, 불교에 대해 관심이 생겼답니다. 그중에 불교는 얼마전 매스컴을 통해 보여진 사실에 접었고 두개종교를 담고 있던중 성당을 다니는 이에게 “성당다니면 뭐가 좋아요?” 라고 물었더니 “다녀봐야 알지요.” 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다시 한번 “뭐가 좋은게 있을 것 아닙니까?” 라고 하자 “쉽게 생각했다가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확신이 서면 다니세요.” 라고 했다면서 투덜거렸습니다. 본인은 멋있는 성당이 좋은 것같아 그곳을 다니면 어떤가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맘대로 하라는 식이었다고 했습니다. ㅠㅠ
    그래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그분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답해주고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요. ㅎㅎㅎ
    그게 그분만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늘 다시금 듭니다. 마셔도 마셔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에서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는 이라면 그런 모습으로 외인에게 비춰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웹진을 통해 말씀과 전례 그리고 교회사, 성인들의 모습마저 엿볼 수 있음에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더욱 깊이 드는 오후랍니다.
    부족함을 채울 수 있게 언제나 열어놓는 웹진!
    목마른 모든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우물! 그리고 언제든 마실 수 있게 예쁘게 빗어진 사랑의 조롱박!
    바로 그와같은 웹진이지요. 부족하고 여리디여린 작은 가슴으로 삼위일체를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 ^*^

  2. 2herena 님의 말:

    찬미 예수님!

    깜깜한 밤하늘에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별하나 나하나, 별 둘 나 둘~~그리고 나의 하느님…ㅎㅎ
    잠깐이나마 수줍었던 소녀로 돌아가 미소지어 봅니다.
    하늘은 이렇게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인간이 사는 지구 곳곳의 상황들은 너무 변화무쌍하고 암울하기만 하네요.
    오늘도 인간 때문에
    삼위일체가 되신 하느님을 너무 아프게 하지않았나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스의 경기침체란부터 이라크,시리아의 죄없는 아이들에 살생과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또한 청소년들의 자살율등
    요즘들어 더욱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말씀이 절실하게 다가오네요.

    그리고 오늘 삼위일체주일을 맞아
    하느님께서 왜 육을취해 세상에 오셨는지를 더욱 깊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또한 신부님의 강론말씀을 읽으면서
    이렇게 삼위일체를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해 주신 말씀도 드물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많은 신자분들이 이 말씀을 먹고
    독서에서 말씀하셨듯 그분과 하나되어 성령안에서 하느님만 바라보는 삶이길 기도해 봅니다.

    저 역시 오래전
    삼위일체를 이해하려고 해부하고 해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미궁속으로 빠지고…
    의구심 때문에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오죽하면 일하다가 사람모양으로 만들어진 알콜램프를 보면서
    삼위일체를 이해하려고 했었던 기억도 있었네요.
    감히 알콜램프에 그분을…

    좌우간 저는 나름 이해하려고
    알콜(성부)를 램프(성자)에 넣고 불을 붙이면 불꽃(성령)이 일어났듯이 삼위일체이신 그분을 비유 했었습니다.

    이렇게 어렴풋이나마 삼위일체가 이해됐다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근무시간에 성당으로 갔었네요.
    뭐~감실앞에 앉아 울기까지 했었습니다.
    암튼 믿거나 말거나~~
    그때는 이렇게 그분을 알려고 노력했음을 고백해 봅니다.

    그럼 지금의 나는 하느님을 삼위일체 한분이시라고 자신있게 고백하며 살고 있는가.
    믿음으로써만 알수 있는 삼위일체라 하셨는데 그런 믿음은 있는가.
    믿음이 있다면 어떻게 삼위일체를 이웃에게 보여주며 사는가.

    알면 알수록 알수 없었던 그분.
    그러나 이제는 알면 알수록 알수 있는 그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사도들과 순교자,이태석신부, 마더 데레사처럼
    사랑때문에 나를 조건없이 찢어주는 사람이 되야겠지요.
    적어도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을 죽일줄 아는 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래야 비로소 “그분을 알면 알수록 알수 있다.” 라고 믿음으로 고백할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그분이 나를 알수 있는 것.
    내가 그분을 알수 있는 것.
    그리고 그분과 하나되어 그분을 드러내는 것.

    좌우간 조물주이신 하느님께서 삼위일체가 되셔야할 가장 큰 이유가 뭐였을까? 묻고 물었습니다.
    “사랑” 때문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저버리지 못하는 무한한 사랑.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가사 중에
    “사랑” 눈감으면 잊으리
    “사랑” 돌아서면 잊는게 아니라
    “사랑” 눈감으면 그분을 영원히 만나리
    “사랑” 인간이 아무리 돌아서도 끊임없이 사랑하리… …,

    그래서 바로 이런 “사랑”때문에
    신이신 하느님께서 육을 취해 사람이 되시고
    인간구원을 위해 죽으신 하느님이 아니시던가
    그것도 모자라 성령을 보내시다니~~

    아무튼 삼위일체가 되실 이유가 없는 하느님께서
    인간 때문에 삼위일체가 되시지 않았나 묵상해 봤습니다.

    묵상글을 쓰다보니 뭔말을 썼는지~~ㅎㅎ(잘못 묵상했다면 지적해 주셔요)

    *오늘도 웹진을 이끌어주시는 여러 어른 신부님들과 운영자 신부님께 감사인사 드리오며
    언제나 주님안에 행복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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