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14주일; 나자렛에서 환영받지 못하신 예수님

예언자는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메시지를 전하는 예수님은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만 정말로 어두웠습니다. 기뻐해야 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을 깎아 내린다고 해서 내가 올라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상대방을 높여주면 내가 더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동네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버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성실하게 봉사하며 신앙생활 하는 이들을 존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고향을 방문하시는 예수님과 제자들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베푸시고, 율법학자들이나 백성의 지도자들에게는 배척을 받으셨던 예수님. 예수님을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고향으로 가시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서 고향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과 함께 고향을 방문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내가 만일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분명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존경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자렛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2.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고향에 가시어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안식일 집회는 기도와 성경 낭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율법서(모세오경)는 언제나 낭독되었으나 예언서의 구절을 선택하는 일은 낭독자의 소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누구나 낭독할 권리가 있었고, 해설을 덧붙이거나 다른 훈계의 말을 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이 권리를 행사하기 원한다는 표시로 예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 낭독을 포함한 그 의식이 시작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례 규정을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경건하고 공손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해설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하였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마르코6,2) 그들은 “① 어디서 저런 지혜를 얻었을까? ② 어디서 저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얻었을까?”생각하였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보고 믿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듣고 믿어야 하는데 믿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나자렛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불렀습니다. 옳은 말씀을 하시고, 자신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치심과 능력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뻐하고 굳게 믿으며 실천하면 되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는데 자신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3. 믿지 않는 고향 사람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에는 관심 많았지만 예수님의 출신(인성)에는 부정적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마르6,3)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봐서 다 알고 있는데 어디서 뭔 얘기 주워들은 것 아닐까? 예수님의 유년 시절을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데…, 아버지는 누구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초라해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단한 분이심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높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이라는 것이 그들을 더욱 명예롭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 예수님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자! 보세요.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은 일부분입니다.“보시고 믿으세요!”하시면서 기적을 베풀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은 그런 표징들을 원했습니다.

 

4.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예언자의 삶(무지와 교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6,4)고향 사람들은 예언자의 어린 시절을 지켜보았고, 친척과 집안사람들도 지켜보았으나, 그들 눈에 보여 지는 것과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바라보기에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부여하신 참된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나자렛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면 되는데,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니 결국 못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촌 형제들도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보고 “공적으로 드러내서 활동하시기를 권고”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 외에는 그 누구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었고, 그렇게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5. 나자렛에서의 예수님의 행적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고향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으셨고, 모든 이가 구원받게 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습니다(참조: 마르6,5).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구세주이심을 드러낼 아무런 표징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고향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표징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을 바꾸어 믿기를 원하십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당신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사도13,46).

 

기적은 내가 원하는 만큼 일어납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믿는 대로” 해 주십니다. 억지로는 주시지 않습니다. 나자렛에서 기적을 일으키실 수 없었던 이유는 기적을 청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적을 청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몇몇 병자 외에는 아무도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픈 상황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자신들의 교만을 조금이라도 버렸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예수님을 동네의 한 청년으로 보았고, 예수님보다 자신들이 못하지 않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혹시 나도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마음이 전혀 없고,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방해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6.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눈으로 본 것이나, 귀로 들은 것을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떻습니까? 그분께 마음을 활짝 열던지, 걸림돌에 걸려서 닫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나자렛 사람들은 “교만과 질투, 시기심”의 걸림돌에 걸려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걸려 넘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걸림돌 때문에 넘어진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은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나의 닫힌 마음은 오늘도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7.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➁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에 가시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때의 예수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그런데 나자렛 사람들(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만일 내가 예수님의 고향 사람이었다면 나는 예수님께 어떻게 대해 드렸을까요? 그리고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➂ 불신자들의 무리에서 믿음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고 있지만 불신자들의 눈을 의식해서 자기 마음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어야 내 주변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변화를 요구할까요? 어떻게 설득하여 예수님을 믿게 만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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