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성월

“예수께서 근심과 번민에 싸여 그들에게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하시고는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마태 26,38-39)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특별히 묵상하며 공경하는 달이다. 그러나 예수성심성월을 지내면서도 그 의의와 정신을 모른다면 성월을 올바로 뜻 있게 보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간단히 예수성심을 공경하게 된 역사적 유래를 통해 이 신심의 참뜻을 살펴보고자 한다. 즉 이 신심의 참된 정신을 따라 예수성심성월을 뜻있게 지내고, 다시 한 번 성심께 대한 우리의 신심을 불러일으켜 강화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과 성월의 유래
성월 신심 행사가 우리 교회생활 안에 발전된 것은 최근세기 1800년대 이후이다. 예수성심성월은 1856년 교황 비오 9세께서 예수성심 축일을 전 교회축일로 설정하고 그때까지 이미 널리 전파되었던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을 교회의 공적 신심으로 인준하면서부터였다. 물론 성월의 관습이 생겨난 것은 최근세기의 일이지만 그러나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생겨났고 그 정신도 여러 세기를 거치는 동안 점점 뚜렷해지게 되었다. 특히 예수님 친히 성인들에게 나타나시어 영시(靈示)를 주심으로써 이 신심은 인정받고 오늘처럼 널리 전파되게 되었다.
이제 그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이 싹튼 것은 11-12세기경 성 베네딕또 수도회와 치스떼르시안 수도회의 열심한 기도생활에서부터였다. 그들은 주의 수난에 대한 신심이 강했던 성 벨라도와 안셀모적인 사상의 영향 하에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한 군사의 창에 찔린 예수님의 심장(요한 19,31-37)을 사랑의 상처, 창에 찔린 예수님 ‘마음’으로 상징해서 보았다. 그리하여 그 예수님 마음을 특별히 묵상하고 공경하였다. 이들이 이런 열심한 생각을 하게 된 데는 그 이전 근 10세기 간에 걸친 여러 교부들의 가르침이 유산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것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교부들은 예수님의 창에 찔린 옆구리 상처를 은총의 샘으로 보고, 마치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왔듯이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에서 새 하와인 교회가 탄생했다는 가르침을 이끌어 내었다. 이와 비슷하게 11세기의 열심한 이 수도자들은 창에 찔린 예수님의 마음을 상처받은 사랑으로 알아 듣고 예수님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수난신심에서 성심을 공경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신심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에는 사도시대 때부터 하느님의 사랑과 우리를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죽음에 붙이실 만큼 사랑한 예수님의 그 큰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보답하는 뜻으로 뜨거운 애정을 갖고 늘 살아 왔지만, ‘예수님의 마음’이란 대상을 놓고 존경을 드린 예는 그때까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심이 싹트고 발전하게 된 것은 상당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하느님의 뜻이 있었던 것이다. 성녀 젤뚜르다는 요한 사도 축일 영시 중에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쉴 수 있는 은총을 받고 예수님의 가슴에서 그분의 신적 마음의 진동 소리를 듣게 되었다. 기쁨에 찬 성녀는 요한 사도에게 사도께서도 최후만찬 때(요한 13,25) 이 감미로운 주의 성심의 소리를 들었다면 왜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사도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계시는 세상이 점점 냉랭해져 주님의 사랑에 대한 열정이 요구될 후세대를 위해 보존해 두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계시의 말씀은 성심께 대한 우리의 애정이 이미 필요해진 세대임을 말해준다고 본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싹트기 시작한 성심께 대한 신심은 15,6세기를 거쳐 많은 수덕 신비가들에 의해 실천되었고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 신심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사적인 개인 신심으로 실천되었다. 그러다 지금처럼 전례적으로 공신적인 공경을 드리게 된 것은 성 요한 에우데스(1601-1680)가 성심미사를 설정, 1670년 렌느교구 주교의 인준을 받아 처음으로 성심미사를 봉헌하면서부터였다. 그래서 교황 비오 10세께서는 그를 예수성심의 전례적 공경의 첫 시창자요 스승이요 사도라 불렀다. 그러나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신심이 우리 교회 안에 꽃피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성녀 말가리따에게 예수님 친히 그 성심을 계시해 주셨고 어떻게 하라는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녀 말가리따(1647-1690)는 살레시오회 수녀원에 들어가 수덕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주께서는 그를 통해 성심공경을 전파시키고자 하셨다. 즉 하루는 기도에 몰두하고 있던 그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시어 주위에는 가시관이 둘려 있고 위에는 십자가가 있으며 사랑의 불에 타는 자기 심장을 내 보이시며, “보라,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는 이 마음을! 나는 여기에 대해 감사를 받아야 될 것이거늘 그 보답으로는 오히려 냉담과 망각뿐이구나!”하시며 대신 보속할 것을 명하셨다. 그리고 보속의 방법으로는 예수성체축일 8일 후에 오는 금요일에 성심축일을 지낼 것과 매달 첫 금요일에 고백성사를 받고 영성체 할 것, 매 목요일에 성시간을 지켜줄 것, 가정을 성심께 봉헌케 할 것 등을 가르쳐 주셨다. 성녀 말가리따에게 이러한 계시가 있은 후 처음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사실 여부가 문제였다. 그러다가 교회의 여러 가지 심사를 받고 나서 지당한 신심행사로 인정되어 여러 수도회에 받아들여져 실천되었다. 이러한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이 모든 신자들에게 전파되어 온 교회가 성심을 공경하게 된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교황 비오 9세께서 1856년 성심축일을 전교회 축일로 제정하고, 성심을 공경하는 행위에 대해 은사를 허락하시면서부터였다. 그 후 188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께서 천하만인을 성심께 성대해 봉헌하셨다. 이렇게 해서 예수성심을 열심히 공경하게 되었고 지금처럼 성월을 정해 이 신심을 실천하게 된 것이다.

2.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의 올바른 정신
앞에서 이 신심의 역사적 발전을 보면서 이야기했듯이 이 신심의 참된 뜻은 바로 예수님의 구원적인 그 사랑에 대해 보답하기 위해 우리가 애정을 갖고 성심을 공경하며 사는 데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그의 인성이 갖고 있는 사랑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인간적인 애정과 사랑을 갖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또한 인간을 구하고자 하는 신적인 사랑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실 때 그분의 마음은 한없이 커다란 고통을 맛보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고 애통해 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죄를 통회하고 보속함으로써 그 고통을 감해 드리고 위로해 드린다는 데 이 신심의 뜻이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신심 속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심을 닮아가는 데 그 뜻이 있기도 하다. 성서를 통해 예수님의 마음 속에 있는 온갖 덕을 본받기 위해 성심을 묵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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