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아들 우리주 – 영원으로부터의 하느님 아들

 

예수의 부활



십자가상에서의 예수의 치욕적인 횡사(橫死)와 함께 모든 것은 끝장난 것처럼 보였다. 예수의 제자들조차도 그의 죽음을 자기네 희망의 종말로 이해했음이 거의 분명하다. 환멸과 체념 끝에 그들은 자기네 가족과 직업으로 되돌아갔다. 가까이 왔다고 하던 하느님 나라에 관한 예수의 메시지는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거짓으로 판명된 것처럼 보였다.1) 그렇지만 예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이 성서가 전해주는 예수 전승의 마지막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제자들이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 있는 예수의 인격을 체험했음을 읽을 수 있다. 복음서들은 하느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케 하셨다는 증거를 상세히 증언하면서 끝맺고 있다.


예수 부활의 메시지는 초대교회와 복음서 저자들이〈부활 후에〉나자렛 예수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그들에게는 예수의 인격과 업적이 십자가로 인하여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운동 혹은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고 이로써 예수를 메시아로 믿음을 특징으로 하는 구원의 공동체인〈교회〉가 형성된 것이다. 십자가에 못받히신 메시아 예수를〈주〉로서,〈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의 구원행위로서 설교하는 복음의 정식으로 선포되기에 이른 것이다.2)


         


━ 하느님의 종말론적 위업3)


신약성서는 예수의 부활에 관해서 언급할 때 그분이 당신 홀로 능동적으로 ‘부활’하셨다는 표현을 매우 드물게 사용하고 있다(루가 24,7; 요한 20,9). 대부분의 경우 하느님이야말로 예수를 깨워 일으키신 행동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표현하기 위하여 이른바 ‘신론적 수동형’을 사용하여 ‘예수가 깨워 일으켜졌다, 부활되었다’고 말한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의 위업, 곧 하느님의 위업이요, ‘그분의 억센 힘의 작용력으로’ 이루어진 업적이다(어페 1,19). 그리고 예수의 부활은 하느님의 종말론적 위업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종말론적 자기계시이다. 즉 부활에서 하느님이 누구이신가가 그 이상 능가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으로 계시된다. 당신의 권능으로 삶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를 에워싸시는 분, 창조적인 사랑과 신의 그 자체이신 분, 새로운 생명의 권능이신 분, 그러기에 인간적인 모든 가능성이 파국에 이르렀을 때에도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으로서의 하느님이 계시된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에 의해 선포된 하느님 나라의 계시요 그 실현이다.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시킴으로써 하느님은 당신 사랑의 신의를 실증하셨고 예수 및 그분이 내세운 본연의 일을 결정적으로 인정하셨고 당신 자신과 동일시 하셨다.


━ 그분의 현양(顯楊)4)


성서는 부활사건을 ‘높이다’와 ‘현양’이라는 개념으로써 표현한다. ‘현양’이라는 개념은 요한복음에서는 두 가지 의미의 표현으로 사용되어 있다. 그것은 십자가에 높이 들어올린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버지 하느님께까지 들어높임을 받았다는 뜻(요한 3,14), 곧 영광을 입었다는 뜻(요한 7,39)이기도 하다. 십자가의 순종은 예수의 존재의 가장 내밀한 중심이요,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예수의 자기헌신이요 동시에 그것은 아버지 하느님께로 올라가심이요 영원한 영광에로 들어가심이다. 십자가에 높이 매달렸다가 성부께까지 높임을 받았다는 이 하나이여 동일한 사건에서 현양되신 분은 일체의 권력을 부여받았다. 하느님의 오른편으로 현양되셨다 함은 저승에 있는 어느 공간으로 사라져 갔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 곁에 계신 예수의 존재, 하느님과 그 권능 및 영광이라는 차원에 속하는 예수의 존재를 의미한다. 


━ 구원사건5)


예수의 부활은, 예수가 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확인되었으며 이로써 하느님과 더불어 사랑과 생명을 교환하기에까지 이르렀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에 못지않게 하느님은 예수를 부활시키고 영화롭게 하시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위하시는 예수의 위타존재를 수락하시고 세상과의 평화와 화해를 궁극적으로 이룩하셨다. 이제 이 예수 안에서 그리고 예수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쏟아지게 되었다.




  주님(主: κύριος)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부활 및 현양을 근거로 하여 획득하신 구세사적 의의를 성서는 예수를 ‘κύριος’, 즉 ‘주님’으로 고백하는 가운데 표현한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고백과 마찬가지로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은 초대교회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떠맡고 있었다(로마 10,9; 1고린 12,3).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문은 처음부터 예수를 주님이라는 신성한 칭호로 부름으로써 권능과 영예와 영광을 하느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예수께도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확언하였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느님과 같은 분’(필립 2,6)이시며, 성부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당신의 영광 안에 찬미받게 하심으로써 예수의 주권을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이다. 결국 이 칭호는 부활하시어 현양되신 분이 그곳에서 발휘하게 된 권세를 표현하고 있다.6)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자기주장의 모든 깊이, 그분 인격의 모든 신비를 깨닫게 하며, 후에 신양성서와 초대교회에서 전개된 신앙고백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큰 역활을 발휘하고 예수를 가장 적합하고도 풍부하게 형용하는 칭호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은 하느님 성부께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영원한 관계를 의미한다.7)


예수 스스로에게서 유래되는 칭호는 ‘사람의 아들’이며 ‘하느님의 아들’을 포함하여 그 이외의 것들은 부활 이후에 교회가 부여한 것이다. 비록 하느님의 아들 칭호가 부활 이후에야 비로서 예수에게 적용되었지만 실상 이 칭호는 부활 이전 예수의 선포와 행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부활 이전에 예수는 “압바”라는 신칭(神稱)에서 드러나듯이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하느님을 선포하였다. 이렇게 부활 이전에 드러났던 예수와 하느님과의 독특한 관계가 부활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되었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부활 이후에 예수에게 하느님의 아들 칭호가 적용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아들 칭호는 예수가 하느님과 유일무이하게 고유한 방식으로 일치해 있으면서 하느님의 참되고 실제적으로 계시하며, 예수를 참되고 실제적으로 당신의 아들로 규정한다. 신약성서에서 사용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구약성서를 배경으로 이해되고 있다. 구약성서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할 때는 어떤 생식과정을 거쳐 하느님께 태어났다는 자연적 연관이 아니라 선택과 파견, 입양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에게 붙여진 하느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초인간적이고 신적 존재가 아니라 현양에 의해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착봉된 지배자라는 뜻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란 칭호의 관심사는 육친적 아들의 신분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한 간택과 전권 위임이다. 결국 이 고백은 구약성서를 배경으로 “자연적­실제적으로가 아니라 기능적­인격적”으로 이해된다.8)


━ 하느님 아들의 선재(先在)


신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의 선재에 관한 진술이 시작에서 끝으로가 아니라 끝에서 시작을 향해서 고찰되었다. 즉 첫 번째 신앙의 증인들은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한 분에서부터 예수 생애의 시작을 소급해서 바라보았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아들’ 칭호는 점차적으로 예수의 세례(마르 1,9-11), 예수의 탄생(루가 1,32.35), 마침내 탄생 이전의 하느님의 영원성(갈라 4,4; 요한 3,16)에로 거슬러 올라가 적용 되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저 일시적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영원으로부터의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낸다.9)


요한 복음은 “맨처음 말씀이 계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씀’이 누구인지는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이 ‘말씀’이 14절에서 ‘살이 되셨다’고 한 그 ‘말씀’이라는 데에 추호의 의심도 있을 수 없다. 즉 1절은,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이 이미 맨처음부터 계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맨처음’이라는 표현은 창세기 1,1의 말씀을 연상케 한다. 창세기와는 달리 요한에게서는 하느님께서 처음에 말씀을 지었다는 말이 없으며 따라서 ‘말씀’은 하느님이 지은 첫째요 가장 탁월한 피조물일 수 없다. ‘말씀’은 맨처음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즉 ‘말씀’은 시간성이 없으며 절대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10)


신약성서에서 선재에 대한 진술은 십자가에 못받혔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의 유일무이한 권리주장을 맹백히 하여준다.


예수의 하느님 아들이심은 바울로의 십자가 신학에서 가장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역사학적으로 해석되어 나온다. 십자가는 부활과 함께 하느님의 역사하심, 아니 하느님의 종말론적이요 궁극적인 자기언표의 상징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역시 십자가와 부활로부터 그 결정적인 해석을 얻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느님은 권능과 위세와 영광 중에 당신을 계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 십자가에서 그분은 흔히 위대하고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존경할 만한 것으로 통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당신을 계시한다. 극에 이른 무력(無力)과 치욕, 멸시와 무의미 가운데 당신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십자가는 하느님의 자기비허(κένωσις)로서만 해석된다.11)


그리고 영원으로부터 선재한다는 진술은 예수와 그의 사건이 하느님에게 뿌리를 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서 연역불가능한 고유성과 함께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12)  


신약성서의 선재언명들은 나자렛 예수라는 인물과 그 업적의 종말론적 성격을 좀더 새롭고도 깊이있게 표현해 준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결정적으로 아무런 유보 없이 그리고 그이상 능가할 수 없을 만큼 몸소 계시하고 건내주었기 때문에, 예수는 하느님의 영원한 본질을 정의해준 분이다. 그리스도 사건의 이와같은 종말론적 성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맺어진다. 예수는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아들이고 하느님은 영원으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다. 그러기에 예수의 역사와 운명은 하느님의 본질에 뿌리받고 있다. 동시에 하느님의 본질이 하나의 사건으로 실증된 것이다.13)




  그리스도론




━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과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


초세기(2-3세기) 교회 안에는 두 가지 그리스도론적 경향이 존재하였다.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과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 그것이다.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요한 복음 서론에 기초하여 Logos­Sarx(말씀­肉)도식을 따르고 있으며,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공관복음과 바울로 서간에 기초하여 역사의 예수에서부터 출발하는 Sarx­Pneuma(肉­성령)도식을 따르고 있다.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그분의 신적인 현실과 인간적 현실을 종합하고자 하는 그리스도론적 경향을 갖고 있었고,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특징을 강조하고, 그분의 신적인 현실과 인간적 현실을 구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였다.14)


  ━ 잠재적 그리스도론과 명시적 그리스도론


잠재적인 그리스도론은 지상예수의 말씀과 업적, 즉 율법에 대한 해석, 기적, 죄의 용서, 수난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등을 통해 그분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과 권능(exousia)을 지니셨다는 것을 추구하며, 명시적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부활을 체험하고 그 바탕에서 찬미가와 교회형식으로 그리스도 사건 전체를 신앙의 관점으로 응답하여 표현한다.




 




















          예        수


        그   리   스    도


             역        사


              신        앙


           사람의 아들(人子)


       주 님(主),  하느님의 아들


            人        性


            神        性


      →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

           (顯楊의 그리스도론)

      →    잠재적 그리스도론


      →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

          (先在의 그리스도론)

      →   명시적 그리스도론




  토론내용




━ 역사의 예수를 주님,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결정적으로 이끌어 주었던 부활체험을 우리 각자는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체험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은 카테고리: 가톨릭교리자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