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주의 Modernismus

  근대주의 近代主義  Modernismus

  신학과 관련해서 근대주의는 성서와 교회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모색하는 노선으로 파악되고 있다. 근대주의를 둘러싼 마찰과 갈등은 프랑스 출신의 사제 루아지(Alfred Loisy, 1857~1940년)를 통해 빚어지기 시작하였다. 루아지는 독일 개신교의 성서 비판 방법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역사적 방법의 원리들을 성서나 초대 교회의 문헌을 해석하는 데 이용하였다. 루아지는 교회의 도그마는 ꡐ하늘로부터 떨어진 진리ꡑ가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그 대신 교회의 도그마는 시대의 이해에 따라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루아지는 교도권으로부터 학문이 독립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1903년 루아지의 저술들은 금서 목록에 올랐고, 루아지는 이러한 조치에 복종하였다. 그러나 교황 비오 10세가 1907년 공표한 회칙 Pascendi를 통해 근대주의의 주장들을 단죄했을 때 루아지는 이 단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그 결과 루아지는 파문되었다. 루아지는 신학을 위한 중요한 자극을 제공하였으나 이러한 자극이 신앙의 초자연성을 해체시키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아울러 계시와 교회의 전통을 약화시키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교황 비오 10세가 반포한 회칙과 관련해서 1910년 반근대주의 선서에 대한 규정이 제정되었다. 모든 사제들은 사제 서품 전에 또는 교회의 새로운 직무에 취임할 때 이 선서를 이행해야만 하였다. 이 선서는 근대주의를 겨냥해서 가톨릭의 신앙 진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968년 종래의 형식에 따른 반근대주의 선서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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