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대주교직 Patriarchate

  총대주교직  總大主敎職 Patriarchate

  교회 초세기에 있어서 로마, 안티오키아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세 주교좌는 매우 두드러진 지위를 누렸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325년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 두 주교좌는 로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역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 결과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 두 주교좌는 교회 내에서 상위의 행정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또한 니케아 공의회는 예루살렘에는 행정 지구가 없는 명예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행정의 중심지는 그에 상응하는 행정구역을 필요로 하였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와 에집트의 지역을 관리하고, 안티오키아는 시리아, 시칠리아, 키프로스를, 그리고 로마는 서구 라틴 지역 전체를 관리하게 되었다. 발칸 반도를 포함하는 그리스는 로마의 관리 지역에 속하였다. 비잔틴에 주재하고 있던 황제는 이 도시의 주교 역시 다른 도시의 주교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하였다.


  381년에 개최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는 로마 다음가는 총대주교의 지위 –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보다는 앞서는 – 를 누린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 결과 폰투스, 아시아, 타르시아가 비잔틴 총대주교의 관할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451년 개최된 칼케돈 공의회는 로마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지역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가 관할하는 지역에 예속시켰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에게는 오래 전부터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에 부여된 권리와 동등한 권리가 인정되었다. 이에 대해 교황 레오 1세는 항의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ꡐ총대주교ꡑ라는 칭호는 6세기에 이르러 그 중요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당시 일반적으로 주교들에게 사용하던 ꡐ파파스(Papas)ꡑ라는 칭호가 로마의 주교(교황)에게만 사용되도록 유보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는 스스로 ꡐ전 교회 총대주교ꡑ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이 두 칭호는 전체 교회를 지도해야 한다는 요구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심은 오로지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사이의 관계에만 해당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경우 이러한 경쟁심은 정치적인 동기에서 출발하였다. 황제는 제국 – 교회까지도 포함해서 –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고하게 다지기를 원하였다. 이에 대응해서 로마는 성서적이고 종교적인 사상에 입각해서 자신의 지도 기능을 주장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교회는 사도 베드로에 의해 창립된 로마 교회의 지도적 지위를 거부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교회 역시 사도 안드레아에 의해 창립되었다는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하였다. 즉 사도에 의해 교회가 창립되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사이의 대결은 전 중세기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러한 대결은 여러 단계를 거쳐 분열(1054년)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열은 1962~1965년에 걸쳐 개최되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극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 교황들과 공의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 교회의 완전한 재일치는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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