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시우스 Photios

  포시우스  Photios

  858년 비잔틴의 총대주교 이냐시우스가 퇴위하고, 그의 후임자로 학자 출신의 포시우스가 선출되었다. 포시우스의 은혜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반대자 테오그노스토스(Theognostos) 수도원장은 교황 니콜라오 1세에게 포시우스 선출에 관해 허위 보고서를 보냈다. 교황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해서, 또한 실제 상황을 잘못 판단해서 863년 포시우스를 파문시키고 이냐시우스를 다시금 복원시켰다. 그러나 사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냐시우스는 자진해서 퇴진하였고 후임자의 선출을 제안하였다. 포시우스는 교황에게 자신의 선출에 대한 보고서를 보냈다. 그사이 이냐시우스의 제자들은 포시우스의 선출에 대해 공격하였다. 그래서 포시우스와 황제 미카엘 3세는 교황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특사를 파견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교황은 이 청원을 수락하였다.


  861년 교황의 특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포시우스가 선출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다른 한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교회는 규율 문제와 관련해서 로마의 총대주교가 최고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수도원장 테오그노스토스의 속임수에 놀아났다. 그래서 교황은 자신이 파견한 특사가 내린 결정을 단죄하였고, 863년 포시우스를 파문시켰다. 황제 미카엘 3세가 교황의 결정을 거부하자 교황 니콜라오 1세는 로마의 수위권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 867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개최되었던 시노드에서 황제는 교황의 퇴위와 추방을 선언하였다. 그 결과로 발생한 불화는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를 더 깊은 단절의 관계로 치닫게 하였다. 바로 여기서부터 동바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열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었다. 제8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는 이 분열을 조정하는 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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