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논쟁 Ritenstreit

  전례 논쟁  典禮論爭  Ritenstreit

  교회는 선교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 해당 지역의 전통적인 제례와 종교적인 관습을 전례 안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기도 한다. 영국 선교와 관련해서 교황 대 그레고리오 1세는 자신이 파견한 아우구스티노에게 앵글로색슨족의 전통적인 축제와 그 기쁨을 인정할 것을 조언하였다. ꡒ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외적인 기쁨을 누리게 됨으로써 또한 내적인 기쁨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폐쇄되어 있는 인간의 마음을 한꺼번에 사로잡을 수는 없다. 높은 산에 등정하는 사람이 한걸음으로 정상에 다다를 수는 없다. 천천히 그리고 과정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법이다.ꡓ 이러한 조언을 통해 교황은 선교사들에게 가능한 한 기존의 관습에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그리스도교의 정신으로 그 관습을 변화시킬 것을 충고하기도 하였다.


  교황 대 그레고리오 1세 이후에도 이러한 충고는 게르만 민족을 선교하는 데 있어서도 여전히 적용되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교황 하드리아노 2세는 슬라브의 사도 치릴로와 불가리아의 선교사였던 메토디오에게 전례 거행에 있어서 슬라브 언어 사용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17세기에 들어와 선교사들이 선교 지역의 관습에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의 제기와 함께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 특히 이 물음은 중국에서 매우 시급하게 대두되었다. 1693년 중국의 황제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신봉을 허용하였다. 하지만 귀족 가문에서 실천되어 오던 의식은 조상과 공자 숭배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중국에서 선교에 전념하던 대부분의 예수회 회원들은 이러한 의식을 – 이 의식들이 비록 종교적인 예식과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 단순히 일상적인 의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중국에서 선교에 종사하던 다른 선교사들은 이러한 의식을 미신으로 이해하였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상반된 견해들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발생하였으며, 이 논쟁은 1742년 6월 11일 반포된 칙서 Ex quo singulari를 통해 종식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이 칙서를 통해 중국에서의 전통적인 의식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교황은 1715년 발표되었던 교황 클레멘스 11세의 칙서를 원용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하느님 예배의 순수성이 미신으로 말미암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마찬가지로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인도의 밀교 의식도 단죄하였다. 교황의 이러한 결정은 선교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특히 중국과 인도의 지도 계층에 속하는 인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선교 사업에 지장을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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