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 – 럿셀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출신으로 원래는 잡화상을 경영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는 정통적인 장로교 신자였는데 그는 장로교에서 가르치는 예정론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회의 때문에 회중교회로 개종하였다고한다.럿셀은 어렸을 때부터 지옥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었는데 17세때 어떤 사람과 성경토론중에 상대방으로부터 지옥이 없다는 설명을 듣고
큰 감명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그는 안식교의 영향을 받아 예수의 재림문제를 연구하고
4세기의 이단자 아리우스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 것을 받아들여 자기 나름대로 교리 체께를
형성했다.럿셀은 1870년 10대의 어린 나이로 정식 신학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공부
반을 조직하였는데 그 성경공부반의 회원들은 그를 목사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이 단체는
1884년 시온의 파수대 소책자 협회란 명칭으로 펜실베니아주에 단체등록을 하였다.
 렛셀은 항상 요한 묵시록 7장에 나오는 140,000명이란 숫자는 여호와의 증인을 뜻하는 거이
며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144,000명에 이르게되면 세계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만이 살아 남아 세계를 통치하게 되며 자기들 이외의 모든 종교와 세상 정부들은 멸망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1914년에 발생한 세게제 1차대전을 보고 세계는 1914년으로 끝난다.그때까
지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144,000명에 이르게 된다면 세속적인 정부와 일반교회들은 불과 유
황속으로 던져지고 우리 여호와의 증인들은 세계를 통치하게 된다고 예언하였다.(교재 22페
이지 참조)
 창시자가 이렇게 엉망인데 어떻게 그 교의 체계는 올바를까?
그리고 그 무렵 럿셀과 그의 교단은 몇가지의 어려움을 맞고있었다. 그 하나는 소위 기적의
밀 사건이었다. 그것은 럿셀이 축복한 밀은 다른 종자보다 5배나 성장하여 결실을 맺는다고
하여 1파운드당 1달러씩 받고 팔았던 사건이다. 럿셀은 이 사실을 보도한 신문사를 상대로
법적 투쟁을 벌였으나,패소하고 말았다.
   또다른 사건은 렛셀이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쓴 침례교 목사를 상대로 고소한 사건인데
이 재판과정에서 렛셀이 희랍어를 모른다는 것과 목사안수를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 밝혀
졌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럿셀의 부인이 럿셀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거이었다. 이혼
사유는 럿셀의 독단적이고 이기적이며 지배적인 태도와 럿셀과 다른 여자 신자들간의 추문때
문이었다.
 말세론의 부적중과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여호와의 증인은 큰 피해를 입기 시작하였다. 많
은 신자들이 교단을 이탈하기 시작하였으며 기성교회로부터의 비난 또한 거세게 일어났던 것
이다. 그러던중 럿셀은 1916년 켈리포니아 전도활동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열차내에서
급사하고 말았다.
 
 럿셀이 사망한 몇달 후 협회의 고문이었던 루터포드가 교단을 계승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이
란 이름이 채택된 것은 그의 지도하에서였다.그는 럿셀의 주장을 수정함으로써 교단이 맞는
위기들을 극복하고자 하였다.우선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144,000명에 이르게 되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럿셀의 주장을 요한복음 10장 16절의” 나에게는 이 우리안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라는귀절을 인용하여 여호와의 증인 교단데는 144,000명의 여호와의 증인
들과 다른 양들도 있다고 수정하였다. 또한 1914년은 말세의 끝날이 아니라 끝날의 시작이라
고 수정하였고,럿셀이 예수의 재림시기를 1874년으로 언급한 것은 1914년으로 수정하면서 예
수는 재림후 1918년 자신의 궁궐(말라기 3,1)에 들어가 하늘 정부를 새우고 자신들의 교리를
믿지 않는 자들은 정죄할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말세의 시간을 1925년이라고 주장하였으
나 그것이 불발로 끝나자 다시 1975년 10월 1일이라고 재수정하였다. 그러다가 1942년에 죽
었다. 교재 33페이지에 좋은 말이 나와 있다.
만일 당신이 길을 잘못가고 있다면,자존심,혹은 고집때문에 그것을 시인하지 않을 것인가?  


이탈자들의 활동
우물안의 개구리는 그가 보는 하늘이 제일이고 그리고 그것밖에는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만약 개구리가 그 우물을 나와서 하늘을 바라본다면 개구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물에서 나와 넓은 하늘을 보고 우물서 본 하늘이 전부가 아니었다고 깨달은 사람들 즉 여
호와의 증인으로부터의 이탈자들은 여호와의 증인을 관계 당국에 고발하는 이외에도 기성교
회 신자들을 대사으로 한 홍보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매혹되어 자신의 가정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학업과 직장까지도 포
기하고 선교활동에만 전념하는 자들은상당수에 이른다.그러나 닥친다던 세상 종말의 시간이
어긋나고 자신의 처지가 되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깨달아 스스로 이 종교를 떠나
는 신자들도 상당수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에서는(여호와의 증인)병역거부,수혈거
부 등과 같은 교단의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교리에 의심을 품으면 제명처분하는 것으로 알
려져 있다. 따라서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을 떠나는 이탈자의 수효는 상당히
많다. 
 여호와의 증인을 떠난자들은 쉽게 사회에 복귀하지 못한다. 그들 중에는 이미 가정이 파괴
되었거나(얼마나 열받았으면 남편이 왕국회관에 불을 지렀을가?)학업이 중단되었거나 직장을
잃었거나 또는 병역을 거부함으로써 병역기피자 내지는 전과자의 낙인이 찍힌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교 이전의 상태로 복귀하기도 어렵다.또한 이들은 자기 본래의 종교,즉 여
호와의 증인에 입교하기 이전의 종교로 복귀하기도 어렵다.
그러난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증인의 실상을 폭로하고 그 비리를 고발함으로
써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반여호와의 증인 활동을 전개하는 자들
도 적지 않다. 이들은 현재 이단종교 방지협회와 이단방지선교회등을 조직하여 여호와의 증
인에 대한교리분석활동과 여호와의 증인을 비판 ,고발하는 세미나,계몽강좌,각종 출판물등의
활동을 하면서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개별 상담활동도 하고 있다.
 1986년 6월6일에는 신철수씨외 1381명의 이탈자들이 연명하여 여호와의 증인을   국가와 사
회 또는 가정 및 개인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고 서울지방 검찰청에 집단적으로 고발하였
으며 같은 해 9월 1일 정운영씨외 1580명의 이탈자들이 이 종교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
반이라고 볼수 있는 이적행위들과 가정 파괴 및 그들의 잔악성등을 들어 대검찰청에 고발하
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기성교회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
해야만 할것 같다.



219.255.227.183 이혜진: 정말요 [09/25-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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