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성사

혼인 성사는 그리스도인 남녀가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자유로운 계약을 맺고 결합하여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성사이다.
혼인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오늘날 혼인의 개념과 교회의 가르침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혼인에 대한 현대인들의 사상이 바뀌면서 혼인의 전통적 개념은 도전을 받게 된다. 이제 혼인은 사회적 의무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이며, 부모의 원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랑을 위해서, 결혼식 이후에 기대되던 사랑이 결혼전에 선행하게 된다. 따라서 가정의 본성과 기능도 동시에 변화된다. 가족제도도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 제도도 변화된다.
여기서는 오늘날 혼인성사를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성서, 역사적 발전, 신학적 고찰의 관점에서 살펴보겠다.

1. 성서에서의 혼인성사
성서 안에서 혼인성사의 가르침은 빈약하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축복하시는 은총의 본질을 안에서 혼인성사의 성사서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1.1. 구약의 혼인
1.1.1. 창세기
사제계 문헌인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은 인간을 성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선한 것이며 자녀 출산에 있다. 부부생활과 부부애로 맺어진 혼인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친히 제정하셨고 고유한 법을 주셨다. 혼인에 대한 소명은 남녀의 본성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혼인은 단순한 인간제도가 아니다. 혼인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 존엄성에는 변함이 없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당신 사랑이라는 근본 소명으로 부르셨다. 이러한 소명은 남녀간의 사랑이 당신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절대적이고 변함없는 사랑의 표상이 되게 하신다. 이 사랑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고, 하느님의 축복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창조된 세상을 지키는 공동 노력으로 실현된다(창세 1,28). 성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혼인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남녀의 확고한 결합을 의미한다(마태 19,6).
출산은 하느님의 모상을 드러내는 방식이며 하느님의 세상에 대한 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다. 따라서 혼인은 인간의 책임에 맡겨진 창조의 좋은 선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당시의 사회 문화적 필요에 부응하여 후손을 확실히 이어가고 장차 열매를 맺을 자산을 지켜 나가야 하는 임무를 가진다.
창세기 2-3의 주제는 같은 품위를 갖는 남자와 여자 상호간의 보완성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계획은 죄로 인하여 실패로 돌아가고 죄는 이들 부부에게 혼돈, 고독과 분열, 고통을 체험하도록 한다. 하느님과 단절된 원죄의 첫 번째 결과는 부부의 원초적인 친교가 단절된 것이다. 서로 비난함으로써 관계가 왜곡되고, 하느님의 선물인 상호간의 매력은 지배와 탐욕의 관계로 변하고, 자식을 낳고 번성하라는 소명은 출산의 고통과 생계 유지라는 고생이 부과되게 된다. 서로 사랑하고 일치하도록 불리움 받은 남자와 여자가 죄로 인해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된다. 남녀의 공동체는 파괴되었다. 하느님의 선물인 혼인은 이렇게 죄로 얼룩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남녀관계에서 생기는 악은 남녀의 본성에서 오는 것도, 남녀관계의 성격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바로 죄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죄로 인해 혼인의 질서는 비록 손상되기는 했어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혼인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부부에게 하느님 은총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혼인의 목적인 두 인격의 일치를 실현할 수 없다.
이렇게 창세기는 하느님의 선물인 혼인이 죄로 손상 받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혼인은 원초의 순결한 혼인에로 돌아갈려고 하고, 한편으로 새로운 창조,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새로이 창조되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1.1.2. 율법과 혼인
모세의 율법은 비록 일부다처제와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허락은 했으나 남편의 독단적 지배에서 아내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신명 24,1).

1.1.3. 예언자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를 충실한 부부 사랑의 표상으로 보았다.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혼인은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계약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인간적으로 깊이 경험할 수 있는 부부간의 사랑은 하느님과 백성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밝혀준다.
이에 관하여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호세아의 경우인데, 그는 예레미아 2,2 ; 3,4 ; 3,6-10 ; 31,3-43,1에서 처음에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불충하였던 이스라엘을 마침내 차지하고 말 신랑으로 묘사하고 있다. 계약의 신비를 그리기 위해서 사용된 혼인에 관한 표현들은 대단히 풍부하다. 충실함, 선함, 자비, 총애, 항구한 사랑, 질투, 독점적이고도 전적인 사랑, 불충실, 배반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한계체험은 이러한 인간의 불충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충실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고 그 뜻을 깊이 깨닫게 할 뿐 아니라 종말론적인 희망을, 메시아 시대의 혼인 잔치에 관한 이상을 갖도록 만든다. 여기서부터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이 준비된다. 룻기와 토비트서에서는 혼인과 부부의 정결과 애정에 대한 고상한 의식의 감동적인 증언을 담고 있다. 또한 아가에서도 하느님의 순수한 사랑을 반영하는 인간 사랑의 독특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1.2. 신약
신약에서는 하느님 나라의 실체를 표현하기 위해 혼인의 상징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구속론적인 측면을 내포하게 되었다.

1.2.1. 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느님과 인류와의 혼인 잔치에 관한 선포이다. 예수는 무엇보다 신랑으로 여러차례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예수는 혼인잔치에, 천사들이 참여하는 천상 잔치에 모든이들을 초대하는 신랑이다.
예수의 첫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났다. 교회는 예수께서 혼인잔치에 참여하신 것을 매우 중이 여기며 이를 혼인의 선익에 대한 확인으로 여기며, 그때부터 혼인이 그리스도 현존의 유효한 표징이 될 것이라는 예고라고 본다. 성서는 혼인 잔치의 기쁨으로 시작하고 끝맺는다. 에덴동산의 남자와 여자의 혼인잔치, 새아담의 혼인잔치와 마지막날의 새하와의 혼인잔치(묵시 12)이다.

1.2.2. 공관복음
혼인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혼인에 관한 새로운 법령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이였다. 이런 맥락에서 혼인은 하느님의 창조적이고 구원적인 의지의 현실화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창조 때에 원하신 혼인의 원래 의미에 대해 가르치셨다. 부부의 혼인 유대는 결코 파기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인간이 갈라놓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마태 19,6). 예수의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많은 이들은 당황하게 했고,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결코 불가능하고, 인간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신 것이 아니라 죄로 어지러워진 혼인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혼인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동성 안에서 새롭게 이해된다. 이제 그리스도는 혼인이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에서 이루어지도록 은총과 힘을 주신다. 그러므로 부부들은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혼인의 본래 의미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신들도 지고 따라 감으로써 이를 생활화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혼인의 은총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천인 십자가의 열매이다.

1.2.3. 바오로
성 바오로는 여러 서간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1고린 7,3-4; 골로 3,18-19; 1디모 2,1-8). 바오로는 창세 2,24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뭄을 이룬다”는 말을 인용한 뒤 혼인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에 비유한다. 하느님의 숨겨진 신비는 혼인 안에서 상징적인 모습으로 계시된다. 모든 부부에 관해 말할 때,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언제나 언급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가 보여주는 태도들은 바로 신랑, 신부들이 가져야 할 태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에페 5,25-26). 혼인에 대한 바오로의 신학은 예언자들이나 구약의 혼인에 관한 주제의 연속선상에 있다. 구약의 혼인이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의 표현인 것처럼 신약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의 합일이다. 또한 혼인은 리스도께서 자신의 공동체와 지속하는 관계를 신비스런 방법으로 내포하고 현실화하는 구원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혼인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봉사이자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혼인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미리 맛보는 가치있고 구원을 가져다 주는 실재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가톨릭교리자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