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의 신학적 고찰
‘중재’(仲裁, Mediatio)의 신학은 신약성서의 바탕을 두고 세워졌다. 이 신학의 견지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구약성서에서 중재자들은 예언자와 천사들로서 하느님과 사람사이를 연결해 해준다. 중재자는 하느님과 인간을 일치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는 참된 인성과 신성을 가진 하느님의 아들로서 완벽한 ‘중개자’(仲介者, Mediator)이다(1디모 2,5). 그렇다면 마리아는 중재자로서 어떤 존재인가? 이 질문은 교회의 삶과 관습으로부터 제기되었다.1)
교회는 마리아를 “변호자, 전구자, 중재자”로 생각하고 기도한다.2) 마리아의 중재성은 정의(定義)된 교의가 아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에서 반복하는 바대로 하느님과 성인들의 거룩한 공동체 안에 성인들에 대한 교회의 공경(恭敬)과 기원(祈願)이 있고, 우리를 위한 성인들의 전구(轉求)가 있다고 고백한다면 가장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중재는 교회의 의식 안에서 아주 친숙하게 자리잡고 있다.3)
성서의 증언과 교회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개자(仲介者, Mediator)이며, 그 외 다른 중개자는 없다고 증언한다. 즉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고 유일한 우리 구원의 동인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칙은 마리아를 중재자(仲裁者, Mediatrix)라고 선언하고 있다(21항, 22항, 38항, 39항, 40항, 41항). 따라서 회칙이 선언하는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유일중개’(唯一仲介)를 지칭하는 뜻과는 다르게 알아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를 지칭하는 용어와, 단순한 피조물인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을 지칭하는 용어를 “Mediatio”라는 하나의 단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한된 인간의 단어를 통해 엄청난 구원의 실재들을 표현하다보니 나오게 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말하고 있는, 좁게는 회칙이 말하고 있는 마리아의 중재성 개념에 대한 주의깊고 올바른 인식을 해야 하는 문제가 필연적인 과제로 남는다.
‘마리아의 중재성’은 교회 교도권이 교의로 선포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마리아의 중요한 역할로 인정하고 있다. 회칙은 마리아의 중재성을 ‘모성적 중재’(母性的 仲裁, Mediatio Materna)로 설명하고 있다. 회칙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사명에 협력하는 마리아가 어머니로서 행하는 독특한 역할을 설명해 주는 단어이다(38-47항).
먼저 ‘중개’(仲介, Mediatio)라는 말의 뜻은 “제 삼자의 처지에서, 당사자 쌍방 사이에 서서 어떤 일을 주선하는 일을 말한다.”4) 성서에서는 강생을 통해 신성과 인성을 취하셔서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그리스도의 ‘중개’를 증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를 화해시켜 준 중개자이시다.5)
회칙은 구원 역사 안에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지적하기 위해 이 ‘중재’(仲裁, Mediatio)란 개념을 선택하여 그 개념에 ‘모성적’(母性的, Materna)이란 형용사들을 결부시켜 ‘모성적 중재’(母性的 仲裁, Mediatio Materna)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전례 안에서 그리고 공의회 이후 상대적으로 간과해온 그 낱말을 일깨우면서 교회헌장 제8장의 교리의 빛을 따라 그 단어에 새로운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6)
비록 회칙은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을 지적하기 위해 ‘중재’(仲裁)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일차적인 의미로는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켜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고,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이차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에 ‘참여’(參與, participatio)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일차적인 의미로는 ‘중개’라는 용어를, 이차적인 의미로는 ‘중재’라는 용어를 구별하여 사용하기로 하였다.
‘모성’(母性) 안에는 ‘중재’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모성은 일차적으로 ‘출산’을 통해서 하느님 모상을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달해야 하는 ‘생명전달’(生命傳達)의 중재 역할을 한다. 이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분의 모상이고, 각인이다. 하느님께서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모성은 부성과 더불어 하느님 창조사업의 협력자로서 중재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생명의 주인은 아니다. 모성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7)
또한 모성은 ‘교육’을 통해 한 인간을 사회와 연결시켜주는 중재성을 갖는다. 인간의 최초의 학교는 어머니의 태요, 어머니의 무릎이다. 아기는 어머니의 태중에 생겨난 처음 몇 달 동안 이미 그 자체로 교육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특별한 유대를 형성하게 된다. 어머니는 출산을 하기 전부터 아기의 인격 전체를 형성시켜 주며 자녀는 모성으로부터 유전적, 정서적 요소들을 물려 받는다. 또한 모성은 양육과 교육을 통해 어린 생명이 사회 한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사회성, 가치관, 덕행을 체득하도록 도와준다. 모성은 자녀 교육의 첫 번째 교육자로서 양육과 교육을 통해 자녀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이끌어주는 중재역할을 한다.8)
또한 모성은 ‘신앙의 전달’을 통해 한 생명을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연결시켜주는 중재의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 생명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그 마지막 목적도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친교를 맺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성은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이 간직한 신앙을 자녀에게 전달할 책임과 특권을 부여받았다. 모성은 자신이 간직한 신앙의 신비를 자녀에게 가르침으로써 자녀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9)
모성은 생명의 부여, 사회성의 전수, 신앙의 전달이라는 중재의 역할을 통해 자녀들의 삶의 동반자가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도 당신 모성의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양육하시는 그분의 동반자가 되셨던 것이다. 이러한 마리아의 모성은 그리스도의 구속공로로 말미암아 은총의 질서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 주어지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