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리아 중재성의 올바른 이해
역사는 마리아의 중재성이 올바로 인식되지 못했을 때의 심각한 오류에 대해 경고한다. 역사 안에서 마리아의 중재에 대한 신심이 올바로 인식되지 못했을 때 마리아의 중요성을 그리스도와 동일하도록 보이게 하는 오류를 가져 왔음을 알고 있다. 그 결과 마리아를 신적 형상으로 만들어 특별한 의미에서 ‘성삼위의 넷째 위격’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마리아를 성체성사와 전례의 중앙에 위치시키기도 했다. 또한 마리아에 대한 전구의 9일기도, 마리아와 관련된 성지 순례, 묵주기도 등을 성사화 시키기도 했다. 마리아의 축일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서적으로 기초된 그리스도 중심, 삼위일체 중심의 흠숭과 태도들을 gm트려 놓기도 했다.1) 그리스도는 성부 오른편에서 진노 가득한 분으로 묘사되고, 마리아는 자신의 망토 아래 사람들을 감싸고 그리스도의 진노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사람들은 여기에서 마음의 위안을 찾았다. 종교개혁가들 특히 루터와 칼빈도 마리아를 공경했으나 이렇게 마리아의 중요성이 과장되는 것을 거부했다.2)
지난 세기 동안 마리아는 성서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여성상으로 구체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느님은 보다 초월적으로 되어버려 그리스도인들의 이해지평 안에서 멀어져 버리고, 오히려 마리아는 신적 내재성의 상징처럼 보다 중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남성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었고, 그 결과 정의의 하느님, 전능한 입법자, 전사(warrior), 자비롭지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아버지로서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성서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성적이고 여성적인 사랑은 마리아에 대한 대중 신심으로 대치되었다. 이렇게 마리아의 중재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그리스도인의 삶으로부터 생명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분리시킨다.3)
1.1.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께(Per Mariam ad Jesum)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마리아 중재성의 의미는 마리아를 사랑하고 마리아께서 자신을 예수께 인도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을 뜻한다. 그녀는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마리아를 사랑할 때 마리아는 머지않아 그들을 그분의 아드님께 다시 돌려보낸다. 왜냐하면 그녀의 삶과 선택의 진실성은 ‘그녀 안으로 그리스도를 모셔옴’(Christoforo)에 있기 때문이다.4)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께’(Per Mariam ad Jesum)라는 공식은 교회의 2천년 역사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의 주축을 이루어왔다. 이 공식의 참 뜻은 우리와 예수의 ‘직접적 일치’를 마리아가 ‘옆에서’ 도우신다는 뜻이며, 결코 우리와 예수 사이에 마리아가 끼어듦으써 중재하여 우리와 예수를 간접적으로만 일치시키신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마리아를 찬미하고 그분께 중재기도를 청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리아의 이끄심으로 그리스도께 보다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함이며, 마리아를 공경함으로써 그분의 아드님을 더욱더 흠숭하기 위함이다.5)
교회가 마리아에 대한 교의들을 선언한 것은 마리아를 우선적으로 신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직접 봉사하기 위해서이다. 마리아에 대한 교리는 참 하느님이시자 참 사람으로서 한 위격 안에 두 본성을 담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본연의 신앙을 보호해 준다.6) 신경에서 ‘동정 마리아께 나셨다’는 구절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실재성(實在性)을 옹호하기 위해 2세기에 쓰였던 표현이다. 에페소 공의회 때도 예수의 신성을 옹호하며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이심이 규정되었고, 이 칭호는 전 교회에서 형성된 신경과 교회 전례문 상의 항구한 요소가 되었다.7)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는 일찍부터, 특히 에페소 공의회 때부터 교회 안에서의 마리아 신심을 크게 성장시켰다. 교회는 기도 중에 그분께 청을 드렸고, 그분을 본받았다. 그러나 교회는 마리아께 대한 공경이 교회 역사 안에서 많은 오류를 가져왔고, 그 공경이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해 굴절되었던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무시한 듯한 형태의 마리아 공경은 신앙의 걸림돌이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이 분열되는 빌미로 제공되었다.8)
마리아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스도를, 그 사이를 가르고 있는 틈을 잇기 위해 놓여진 다리가 아니다. 만일 이와같은 식으로 마리아 신심에 접근하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분의 신성한 인성이 그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회적인 중개자가 되게 하였다는 사실, 이런 사실들을 내포하는 육화의 깊은 의미를 극소화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직접 자비하신 구세주께 다가가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마리아의 중재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마리아와의 일치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요 예수와의 일치야말로 목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 신앙에서 마리아는 이차적이고 부수적인 존재이지만 예수는 중심적이고 절대적 존재이다. 다만 마리아는 예수와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예수와 합치한 분이시므로 마리아와 일치할수록 예수와 일치하게 되고 예수와 일치할수록 마리아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9)
이러한 일치를 통해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마리아와 함께, 성부께’(Ad Patrem per Christum in Spiritu Sancto cum Maria) 예배드린다. 동정 마리아 공경의 본질은 삼위일체론적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예배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이다.10)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마리아 중재의 의미는 그분이 그리스도를 우리 가까이 있게 해주셨다는 데 있으며, 그분의 중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직접 대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계속해서 창출해 내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 여정(iter ad Deum) 안에서 마리아가 당신의 모성적 배려를 통해 일상이나 은총의 질서 안에서 자신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체험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에게 적용시킨 ‘중재’라는 개념을 ‘봉사’라는 계시의 영역 안에 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 더이상 마리아 중재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갖지 않게 된다. 마리아의 중재는 그녀의 믿음과 삶의 증여의 노선 안에 있다. 마리아 중재성에 올바른 이해는 마리아를 첫째 자리로 들어 높임이 아니라 이웃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께 더 봉사하기 위함으로 알아들어야 한다.11)
마리아가 교회 각 지체들을 위해 모성적 중재의 역할을 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마리아의 중재성에서부터 이웃에 대한 자신들의 중재성을 바라봐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은 은총을 인간 공동체의 유대성이라는 한계 안에 설정하셨으며, 공동체의 한 성원이 다른 성원에게 그 은총이 미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였고, 각 사람을 모든 사람을 위하는 당신의 사랑 안에 포함시켰다. 그것은 각자가 자기의 고독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함이다.12) 그래서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는 피조물이 유일 원천에 참여하면서 행하는 여러 가지의 협력을 배제하지 않을뿐더러,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를 준비하고 봉사함에 있어서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요구하고 있다.13)
성인들의 교류 안에서 이 인간의 ‘도구성’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하여 이 지상 위에도 존재한다. 각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속하고 각 개인에게는 자신과 연결된 형제자매들이 있다.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그들과 연결되어있는 한,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한 중재자가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회칙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마리아의 신앙 여정 안에서 그분과 함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에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고 있으며, 인간의 지상 실존이 걸어가야 하는 어렵고 때로는 뒤엉킨 길에 빛을 비추어주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37항).
레오 13세의 ‘노동헌장’(Rerum Novarum, 1891)에서부터 요한 바오로 2세의 ‘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 1987. 12. 30)의 회칙에 이르기까지 가톨릭의 사회교리의 구조는 마리아의 형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마리아와 사회교리의 관계는 초기 신학적 원천인 루가복음의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루가 1,46-56)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성서적 찬가는 ‘하느님께서 강한 자를 끌어내리시고, 가난한 자를 높이셨고, 가난한 이를 좋은 것으로 채우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셨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명확히 선언한다.14)
마리아는 억압받고, 짓눌린 자들과 동일하다. 따라서 마리아의 중재는 분명히 짓눌린 모든 사람들의 존엄성을 정당하게 인정해주고 불의에 항거하는 힘을 준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의 중재성을 보면서 자신들의 삶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재능과 선물을 통하여 이웃에 대한 중재인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은총의 중재자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