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당신의 동정 품안에 임태를 하시어 아버지와 본질이 같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이시다. 그리고 마리아의 특별한 신앙의 순례는 교회를 위해서, 개인과 공동체들을 위해서 민족들과 국가들을 위해서 그리고 어떤 의미로 전인류를 위해서 끊임없는 기준이 된다. 신앙의 여정 가운데 있는 이들이 이 지상에서 그들의 눈을 마리아께 향하게 되는 것은 “그분이 낳으신 아드님이 하느님께서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이로 삼으신 분”이기 때문이며 이 형제 자매들을 낳아 기르시는 데 있어서 마리아게서 모성애로 협력하시기 때문이다.
제1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영원으로부터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 이 계획은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지만 아버지께서 구원 사업을 맡기신 분의 어머니이신 그 “여인”에게 특별한 자리가 부여된다. 이사야서에 의하면 “그 여인은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동정녀이며 그 아들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불릴 것이다(이사7,14 참조).
마리아는 聖母領報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들어오셨다.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루가1,28 참조). 마리아는 천사가 한 말을 다 듣고 나서 승낙을 하신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1,38). 마리아는 신앙안에서 자신을 무조건 하느님께 내맡기셨으며 “주님의 종으로서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치셨다.”
마리아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비교될 수 있다. 하느님이 계시하신 구원의 섭리 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구약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는 반면 영보에서의 마리아의 믿음은 신약의 시작을 이루고 있다. 아브라함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될 것을 믿었던 것처럼, 마리아도 영보 때 ”순종하는 믿음“을 고백하셨으며, 영보의 말씀을 들려주신 하느님께서 친히 그 말씀에 주신 의미에 자신을 내맡기셨던 것이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신비와의 접촉이다. 마리아는 매일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무한한 신비, 곧 구약에서 계시된 모든 것을 능가하는 강생의 신비와 접촉하고 계셨으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충실히 보존하셨다. 그런데 십자가 밑에서,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천사의 예언에 대한 완전한 부정(否定)의 증인으로 서 계신다. 당신의 아들은 단죄받은 자로 십자가의 나무 위에 달려 고통받고 계신다. 하느님의 이 “헤아릴 수 없는 뜻” 앞에서 마리아가 보여준 순종하는 믿음은 얼마나 위대하고 영웅적인가? 이 믿음을 통하여 마리아는 자신을 온전히 비우신 그리스도와 온전히 일치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섭리 계획에 의해서 구세주를 기르신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각별히 친절한 주님의 동반자요 겸손한 종이 되셨으며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의 초자연적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구세주의 구속 사업을 도와드리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의 유언을 통하여 개인과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는 이 신비의 한가운데에 서 계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개인 모두와 전인류에게 어머니로 주셨다. 그러므로 믿음에 의해 태어난 이 마리아의 새로운 모성은 당신 아들의 구원하시는 사랑에 참여함으로써 십자가 밑에서 결정적인 완성에 이르게 된 “새로운 사랑의 열매”이다.
제2부 순례하는 교회의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는 마치 외국 땅에 있는 순례자처럼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로 안에서 나그네 길을 계속하며 주께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십자가와 죽음을 전한다”(1고린11,26참조).
교회의 순례가 지니는 본질적 특성은 내면적인 것, 즉 신앙에 의한 순례,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보이지 않는 위로자로 교회에 주어진 성령 안에서의 순례이다. 바로 이 장소와 시간을 통한 교회의 여행 내지 순례 안에서 그리고 영혼들의 역사를 통하여 마리아는 “믿었기 때문에 복되신 분으로”, 다른 어느 피조물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시면서 신앙의 순례를 앞서 가신 분으로 현존하시는 것이다. 어느 의미로 마리아의 신앙 여정은 한층 더 길다. 성령께서는 이미 이전에 마리아 위에 내려오셨고, 마리아는 영보 때 “성령의 충실한 신부가 되어 참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셨으며”, 계시하시는 하느님께서 지성과 의지의 완저한 순종을 드러내고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에 자의로 찬동하며, “순종하는 믿음을 통하여” 자기를 온전히 하느님께 자유로 의탁하신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를 앞서 가시며, 우리를 인도하신다.
공의회가 말하듯이, 마리아는 구원의 역사 속에 깊이 참여하신다. 따라서 마리아를 설교하고 공경할 때에 마리아는 당신 아들과 아들의 희생과 아버지의 사랑으로 신도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회의 사도적 증언에 의하면 마리아의 믿음이 어느 면으로 계속해서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의 믿음, 곧 개인과 공동체, 사회와 군중 그리고 교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단체들의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사도적 활동에있어서도 그리스도를 낳으신 마리아를 바라보며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그분이 교회를 통하여 신앙인들 마음속에도 탄생하시어 성장하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여정, 특별히 우리시대의 교회 여정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일치 운동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하나되기를 청하신 것처럼, 제자들의 일치는 세상에 믿음의 불을 일으키는 큰 표징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일치가 신앙의 일치를 기초로 할 때에만 진정으로 재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마땅히 하느님의 가족의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성령의 힘에 의해 동정의 품안에 잉태되셨던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한 분이신 주님께 대한 신앙의 증인들을 “앞서 가시는” 그분을 우리의 공동 어머니로 보아야 한다.
마리아는 온전히 하느님께 속하시며 전적으로 그분을 향하여 계신다. 그리고 당신 아들 곁에 계신 마리아는 인류와 우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가장 완전한 상(象)이시다. 교회는 어머니시요 모델이신 그분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지니는 사명의 완전한 의미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제3부 어머니의 중재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뿐이신데 그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마리아의 어머니 역할은 그리스도의 이 유일한 중재성을 흐리게 하거나 감소시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중재인 것이다. 마리아의 중재는 그분의 모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비록 마리아의 중재도 참여하는 중재이지만 종속적인 형태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재에 참여하는 여타 피조물들의 중재와는 구별되는 특수한 모성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혈육을 취하신 말씀인 구세주와는 어떠한 피조물도 절대로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없음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 유일한 구세주의 중재는 그 유일한 원천에 참여하는 피조물들의 협력을 배제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요구하는 것이다. 교회는 주저함이 없이 이와 같은 마리아의 종속적 역할을 선언하고 끊임없이 체험하며, 신도들의 마음도 이러한 모성적 보호로 중재자이신 구세주께 더욱 깊이 결합되도록 권고한다.
마리아는 이미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기 때문에 구세주의 중재에 종속된 당신의 중재를 통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지상에서 순례하는 교회와 모든 성인들의 종말론적 천상 실재 간의 결합을 이루어 주신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신비에 의해 세상의 구세주이요, 부활하신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재의 효과가 마리아 안에서 결정적으로 성취되었다.
결 론
“구세주의 존귀하신 어머니… 넘어지는 백성 도와 일으켜 세우소서….”
전인류와 더불어 두 천년대의 경계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교회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와 함께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의 일치 속에서, 넘어져 다시 일어나려는 백성이라는 성모 찬송가에 담긴 큰 요구를 떠맡으며, 구세주와 그분의 어머니께 “우리를 도와주소서” 하고 간청한다. 교회는 오늘날 개인과 가정과 국가를 괴롭히는 많은 복잡한 문제들 가운데 어머니로서 함께 서 계시는 마리아를 보며, 끊임없는 선과 악의 투쟁 속에서 그리스도교 백성들을 도와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넘어지면 ”다신 일어나게“ 하시는 마리아의 도우심을 체험한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매 기도 후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칠 힘을 얻는 것이다.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지켜주시고 어려울 때 저희가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물리치지 마소서. 또한 온갖 위험에서 언제나 저희를 지켜주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