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성사-역사적인 고찰(주교단일 지도 체제의 정착1)

 



3. 역사적인 고찰




3.1.  주교 단일 지도 체제의 정착


1세기 이후부터는 카리스마에 근거한 예언자와 교사의 직무는 퇴조하고, 교회 제도화의 진척과 함께 관심은 지도의 직무에로 집중되었다. 이 지도의 직무는 더욱 뚜렷하게 감독 (episkopos), 장로 (presbyteros), 봉사자 (diakonos)의 직무로 구분되면서, 단일 지도 체제인 “주교단일 지도체제”(Monarchischer Episkopat)가 정착하게 된다. 이 시대에 관해서 소수의 문헌만이 남아있지만, 중요한 사실들을 전해준다.




3.1.1.  열두사도의 가르침(디다케)


디다케의 저술 연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1세기 말이나 2세기초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한다1). 디다케의 내용 중에는 상당히 오랜된 가르침이 발견된다2).


디다케에서 대상으로 하는 공동체에는 ‘사도’와 ‘교사’로 지칭되는 순회예언자가 가장 큰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성령으로 충만한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자는 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범하는데, 이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11,7). 그러나 동시에 공동체를 핑게삼아 생계를 유지하는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참된 순회 예언자들은 ‘대사제’ (13,3)이며, 이들은 성찬례에서 감사 기도를 드린다(10,6). 이를 미루어 보아서 아무나 성찬례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중에 첨가된 것으로 추정되는 15장에서는 감독들과 봉사자를 정하라고 공동체에 권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러분은 자신들을 위해 감독들과 봉사자들을 선출하되 주님께 합당하고 온순하고, 돈을 좋아하지 않고, 진실하며, 인정된 사람들을 선출하시오. 그들이 여러분에게 예언자들과 교사들의 직무를 수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무시하지 마시오. 그들은 예언자들과 교사들과 함께 여러분의 존경을 받는 이들이기 때문입다”(15, 1-2). 이 문헌에 의하면 감독들은(복수!) 예언자들의 ‘후계자’로 등장하고, 예언자들과 같은 직무를 수행한다(성찬례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감독들은 다른 감독들에 의해서 임명되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에 의해서 선출되었다(안수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는다). 공동체는 그들을 예언자와 똑같이 존경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3.1.2.  로마의 클레멘스가 고린토인에게 보낸 서간


98년 경에 쓰여진 이 편지에 의하면 고린토 교회에서 정당한 이유없이 감독(장로)이 직무를 박탈당했다. 로마의 공동체는 이에 간여하면서 직무를 박탈당한 이의 편에 서게 된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린토에 교회 직무를 맡은 사람이 분명 있었다는 점인데, 아직은 주교 단일 체제는 아니었다. 로마의 클레멘스가 편지에서 드러낸 가장 큰 관심사는 공동체의 일치와 평화였다. 그는 이를 위해서 여러가지 논거를 사용한다: 질서(우주, 천사, 군대, 인간의 몸, 구약의 사제 – 20. 34. 37. 40. 41.), 한 분이신 하느님과 한 분이신 그리스도(46), 그러나 무엇보다도 파견. “사도들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느님으로부터 오셨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그러므로 둘은 아버지의 뜻에서 잘 질서 지워져서 파견되었다” (42,1).


이 대목은 요한 복음 20장과 비슷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그러나 분명 다른 점도 있다. 요한 20에서는 파견이 성령의 숨결과 연결되어 있는 반면, 클레멘스의 서간에서는 모든 것이 질서의 관점에서 규정된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들 스스로 –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 – 후계자들을 임명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우리의 사도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감독직을 두고 분쟁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 완전히 알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 이런 근거에서 사도들은 지도자를 임명하고, 이들이 죽은 후에 인정을 받은 다른 사람이 이들의 직무를 이어 받도록 규정을 세웠다” (44, 1-2).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한지 20여년이 지난 다음에 쓰여진 클레멘스 서간에 의하면 직무의 후계를 위한 분명한 규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클레멘스 서간은 아직 원로(사제)와 감독(주교)를 명확하게 구분하지는 않고 주교 단일 지도 체제를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44, 3-5). 백성들의 동의 하에 임명된 교회 직무자는 “희생 제물”을 봉헌하는 데(44, 4), 이는 성찬례의 주례를 의미한다. 교회 직무를 맡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계층의 질서에 견주어서 처음으로 ‘평신도’(laikos anthropos)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클레멘스 서간에서 교회 직무는 무엇보다도 분쟁을 피하고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교회 직무를 신학적으로 밑받침하기 위해서 구약성서의 사제직이 인용하는데, 이는 신약의 사제직이 아론의 사제직과는 전혀 다른 종류임을 간과한 것이다. 직무에 있어서 성령의 역활이 더 이상 결정적이지 못하고, 단지 그리스도론적으로 근거 지워졌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셨다!) 바울로는 같은 상황에서 성령의 여러 은사을 얘기하면 조화를 강조하였으나 50여년 후에 클레멘스는 질서를 강조하게 되었다.




3.1.3.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117년경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가 저술한 일곱 편지에는 그리스도의 육화에 대한 강조와 교회공동체의 분열의 위험에 직면해서 일치를 유지하라는 권고가 중심적인 주제로 나타난다. 이냐시오는 공동체를 지도하고 사제단의 우두머리인 주교를 중심으로 모이라고 권유한다(주교 단일 지도 체제). 그런데 이냐시오는 로마의 클레멘스와는 대조적으로 주교의 지위를 파견과 계승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비교를 통해서 신학적으로 밑받침한다. 즉 그리스도가 천상의 아버지에게 순종하듯이 공동체는 주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를 대하듯이 모두는 주교에게 그렇게 대하며, 사제단은 사도를 대하듯이 하시오; 부제는 하느님의 계명처럼 존중하시오”(스미르나인들에게 8,1). 이냐시오에 의하면 주교는 사도들을 통한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대리자이다: “모든 것을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행하도록 노력하시오. 주교는 하느님의 위치에 있고, 사제들은 사도단의 위치에서 지도를 하고, 내가 특히 사랑하는 부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 직무에 임명되었습니다”(마그네시아인들에게 6,1).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모든 사람의 주교이다”(마그네시아인들에게 3,1).3)


이와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이냐시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이들(주교, 사제, 부제)과 떨어져서는 아무도 교회에 대해서 얘기할 수 없다” (트랄리아인들에게 3, 1).


* “주교나 그에게 위탁을 받은 사람에 의해서 거행된 성찬례만이 합법적이다…주교없이 세례나 성찬이 거행될 수 없다” (스미르나인들에게 8, 1-2).


* 오직 하나의 성찬례,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도 오직 하나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의 제단, 왜냐하면 오직 하나의 주교가 있기에 (필라델피아인들에게 4,1).


* “결혼이 육적인 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신랑과 신부는 주교의 재가를 얻어서 맺어지는 것이 마땅하다”(폴리까르보인들에게 5, 2).


* 참회하는 이는 하느님과 주교와의 일치를 고백할 때 용서를 받는다 (필라델피아인들에게  8,1).


놀라운 것은 이냐시오가 자신을 예언자로, “하느님을 모신 자”(Theophoros)로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하느님의 목소리로 외치고…”(필라델피아인들에게 7, 1-2). 이를 통해서 이냐시오에게서 성서의 예언자의 전통과 감독-장로의 직무 전통이 서로 만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즉 예언자의 전통이 주교 중심제로 옮겨간 것이다. 시리아 지방에서는 디다케가 밝혀주는 바와 같이 방랑 예언자를 통한 예언자의 전통이 강하였지만, 빠른 시간 내에 주교 단일 지도 체제가 정착하였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로마의 클레멘스              디다케


아버지—–주교, 예언자        아버지 하느님–>          성령        성령


                                                         :            :   


  그리스도—  부제            그리스도-> 사도->        예언자/사도   공동체


                                                                      :


   사도——   사제             —>주교                              주교


(모상적/ 유비적인 사고)    (이 모델이 후대에 관철됨)




3.1.4.  목자 헤르마스


130년경 쓰여진 이 문헌은 한편으로는 사도, 감독, 교사, 봉사자들에 대해 언급한다(Vision III, 5.1). 다른 한편으로는 장로들을 교회의 지도자라고 얘기한다(Vision II 4.3). 이렇게 볼 때 로마에서는 2세기에도 주교 단일 지도 체제가 형성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예언자와 (Gebot 11,8-10) 증거자가 큰 역활을 하는데, 이들은 원로들보다 더 높다는 인상을 준다.




3.1.5. 이레네오 (+ 202)


영지주의는 사도들이 대중들이 아니라 소수의 엘리트 그룹을 위하여 비밀전승을 남겨놓았다고 주장하는데, 이레네오는 이에 반대해서 사도들의 가르침이 공개적으로 전승된 곳에서만 그들의 참된 가르침을 알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Ad haer. III 3). 이런 곳이란 사도들에 의해서 직접 설립된 교회들인데, 안티오키아, 에페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마이다. 이 교회들의 지도자들에게서 분명하게 진리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레네오는 로마 교회의 주교들의 목록을 제시한다.


“우리가 보여준 것처럼 사도들의 후계자인 교회의 사제들에게 순명해야한다. 그들은 주교직무을 이어 받으면서 아버지 하느님께서 원하신대로 확실하게 진리의 카리스마를 받았다” (IV 26,2).


이레네오가 주장하는 바는 참된 가르침 안에서 일치가 이루어지고, 이 일치는 이전의 세대와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를 그 일치의 근간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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