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성사-역사적인 고찰(주교단일 지도체제의 전개2)

 

3.1.6. 베드로의 묵시록


2세기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헌에서는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환시를 통해서 미래에 나타날 잘못된 교설에 대해서 일러준다. 이에 속하는 것으로는 목자 헤르마스(78,7-22)와, 주교들(79,21-22)이라고 주장한다.


베드로의 묵시록은 2세기에 그리스도를 근거로 내세우면서 주교제도에 반대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베드로의 묵시록은 그리스도가 외면 상으로만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주장하는데(81,15-17), 이를 보아서 분명히 영지주의 계통 문헌에 속한다.




3.1.7. 2세기까지의 교회 직무 발달에 대한 신학적 평가


1세기와 2세기의 문헌들은 무엇보다도 분열과 잘못된 교설에 대한 투쟁이 주교 단일 지도 체제가 형성되도록 이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성찬례 거행을 위한 권한에 대한 분명한 논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이로써 우리가 신약 성서의 고찰에서 얻은 결론과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교회 직무는 (올바른 가르침 안에서의) 공동체의 일치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났다(“축성을 위한 전권”때문에 교회직무가 필요하다는 논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1세기, 특히 2세기의 가장 큰 이단적 교설은 다양한 영지주의적 흐름이었다. 이를 반대하면서 2세기에는 주교 중심제도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의 正經(canon)도 형성되었다. 즉 정경은 주교가 지도하는 교회의 경신례에서 봉독되던 문헌들을 수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주교 단일 지도 체제와 정경의 형성은 단일한 과정 (영지주의와의 대결) 양 면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신약성서가 주교가 이끄는 교회를 통해서 확정됐다면, 주교 단일 지도 체제를 반대하기 위해서 성서를 근거로 내세울수는 없다고 하겠다.






3.1.8. 3세기의 교회 직무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


교회 초기에는 교회직무에 대한 신학이 미처 제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이 시기의 교회직무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를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은 전례를 통한 길이다. 이런 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로마의 히뽈리뚜스(+ 235)가 저술한 『사도전승』(traditio apostolica)이다. 이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 감독자(주교)


* 감독자(주교)는 백성들에 의해서 선출되어서, 기도와 (다른 주교증의) 안수를 통해서 직무에 서품된다: “감독자는 온 백성에 의해 선출되어 세워질 것이다. 모든 이의 동의를 얻어 그의 이름이 발표되면, 주일에 회중은 장로단과 (그곳에) 참석한 감독자들과 함께 모일 것이다. 모두 (감독자들은)는 한 마음이 되어 그에게 안수할 것이며, 장로단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참석만 할 것이다” (TA 2). 이때에 바쳐지는 기도는 새로 임명되는 주교에게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주시는 “위대한 영” (principalis spiritus)또는 “대사제의 영”(spiritus primatus sacerdotii)을 간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제 당신께로부터 오는 위대한 영의 능력을 (이 형제에게) 부어 주소서. 당신은 그 성령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면, 또 (그분은) 거룩한 사도들에 주셨으며… 감독직을 위해 간택하신 당신의 이 종으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한 양떼를 보살피며 책잡힐 데 없을 만큼 대사제직을 당신께 수행하게하시고, 밤낮으로 (당신을) 섬겨 끊임없이 당신 얼굴의 (노여움을) 풀어드리고, 당신의 거룩한 교회의 제물을 바치게 하소서. 대사제의 영의 (능력으로) 당신의 계명에 따라 죄사하는 권한을 가지고, 당신의 명령에 따라 직무을 나누어 주며, 사도들에게 주신 권한에 따라 온갖 속박을 풀어 주게 하소서” (TA 3). 이 기도에 의하면 지도의 영에 속하는 것으로는: 양떼을 이끌고, 대사제로서 항상 공동체를 위하여 존재하고, 제물을 봉헌하며(성찬례), 직무를 부여하고 죄를 사하는 사명이다.


(2) 장로(사제)


* 장로는 감독자와 다른 장로들의 안수를 통해서 직무에 임명된다.


* 성령을 청하는 기도에서 장로 직무를 위해서 “은총과 의견의 영”(spiritum gratiae et consilii)을 구한다(TA 7).


(3) 봉사자(부제)


* 봉사자의 서품에는 감독자 홀로 안수한다 (“주교의 비서”)


* 서품 기도에서 봉사자를 위해 “은총과 열의와 열성의 영”(spiritus gratiae et sollicitudinis et industriae)을 청한다.


(4) 증거자(confessor)


*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지만 목숨을 보존한 증거자는 초기 교회에서 큰 권위를 지녔다. 그들의 영적인 권위는 안수를 대신했다. 그래서 증거자가 사제가 될 경우에는 그들에게 안수를 하지 않았다: “만일 (어떤) 증거자가 주님의 이름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었다면, 봉사자직이나 장로직을 (주기) 위한 안수를 그에게 하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신앙) 고백을 통하여 이미 장로직의 영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일 그를 감독자로 세우려 하면, 그에게 안수할 것이다” (TA 9).






3.1.9. 결론


히뽈리뚜스의 『사도전승』은 1- 2세기까지의 문헌들이 증언하였던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교회 공동체의 지도와 성찬례의 주례를 위해서는 특별한 권위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권위에 대해서 처음부터 분명하게 규정된 것은 아니었다. 예언자나 증거자도 그 권위에 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감독자-장로의 권위 체계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주교 단일 지도 체계가 급속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교-사제의 권위 체계에 다음과 같은 결정들이 뒤 따른다. 아를르(Arles)의 공의회(314)에서는 그 당시에 널리 퍼져있던 부제가 성찬례를 주례하던 관습을 잘못된 행동이라고 간주하고 금지하였다1). 칼체돈 공의회 (451)는 카논 6조에서 絶對 祝聖, 즉 구체적으로 한 공동체와 관련이 없는 지원자를 축성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누구든지 절대적 방식으로 (apolelymenos) 사제나 부제로 ‘서품’되어서는 안된다…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순교자묘 (martyrium)에서든 수도원에서든, 그에게 명백히 한 지역공동체가 지정되어 있지 않다면”, 그런 경우에 “그의 임직 (cheirotonia)은 무효이며,…따라서 그는 어떤 기회에라도 직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거룩한 공의회는 결정하는 바이다”2). 이 결정은 사제직무가 점점 더 교회 공동체와 유리되어서 단지 축성의 권한으로 이해된다는 것을 반영해준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신약성서와 그 이후의 발전과정을 고찰해 볼 때 주교와 사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성서에 정통하였던 예로니모는 주교와 사제의 구별은 단지 교회법적인 구별이라는 하였다3). 많은 이들이 예로니모의 견해를 따랐는데, Ambrosiaster, Isidor v. Sevilla, Akluin, Haimo von Halberstadt, Hrabanus Maurus등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세의 교회법 학자들이다 (Decretum Gratiani)4). 이런 통찰에 근거해서 15세기의 교황들은 사제 수도원장에게 사제를 서품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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