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총론-구세사의 성사적 구조(신약성서)

 

3.2. 신약 성서


신‧구약성서는 구세사의 시작과 끝은 하느님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즉 구원의 역사는 하느님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에서 출발해서, 그분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1 고린 15,28)이 되시어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으로서의 구세사의 정점에는 하느님의 최고의 자기전달인 그리스도 사건이 위치한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여러번 여러 모양으로 예언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다시 말해서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결정적으로, 더 이상 능가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이는 요한복음에서 분명히 언급되고 있다.“일찌기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요한 1,18). 인간 예수 안에서 하느님 자신이 肉化하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요한 1,14).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구약성서에서에서 계시된 하느님, 즉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을 분명히 드러내신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비해서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은 모든 이들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즉 율법을 준수하는 경건한 자들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하느님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예수께서는 그 당시 사회에서 소홀히 취급받던 어린이와 여인들을 가까이 대하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제지하는 것을 나무라시면서 “어린이들을 안으시고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마르10, 16). 예수를 추종하던 사람들 중에는 남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여인들도 있었고, 요한복음 4장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당시의 관습과는 달리 사마리아 여인과 서슴없이 대화를 나누신다. 더 나아가서 예수께서는 구약의 율법 이해에 따르면 죄인으로 취급받던 병자와 마귀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심으로써 그들을 하느님 백성으로 모아들이신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이라면 상대하지 말아야 했던 세리와 창녀들에게까지도 구원을 선포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구원 선포는 말씀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행복선언), 가시적이고 체험할 수 있도록 병자의 치유, 구마등의 행동과 함께 이루어진다. 공관복음서에는 예수의 이런 가시적 구원 선포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나병 환자에게 “손을 갖다 대고”(마르 1,41), 귀 먹은 벙어리의 “귓 속에 손가락”을 넣고,“그 사람의 혀를 침을 발라” 대시고(마르 7,33), 등이 굽은 여인의 등 위에 손을 올려 놓으신다(루가 13,13). 이런 예수의 행동은 하느님께서 구체적이고, 신체적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인간을 돌보신다는 것을 드러내신다.


하느님의 구원을 드러내는 예수의 행동 중에서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식사공동체이다. 예수께서는 당시에 경건한 이들은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던 세리와 죄인들과 자주 함께 식사를 하셨다. 근동 지방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서로 간의 화해와 친교만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의 화해와 친교를 의미하였다.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한 식탁의 공동체는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의 표징이었다(참조: 마르 2,17; 루가 15,3-32).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의 이별예식으로써 함께 식사를 하셨다는 점에서 식탁의 공동체는 상당히 큰 중요성을 갖는다.


예수는 식탁의 공동체와 다른 상징 행동(치유, 구마)을 통해서 해방시키고, 낫게하고, 용서하고, 함께 모으는 하느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것을 표현하고 실현시킨다. 그래서 예수는 말하기를, “나는 하느님의 능력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가 11,20).


부활 후의 교회 공동체에서는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의 표징 행동이 계속 되었다. 일찌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실현된 것이다: “내 이름으로 마귀도 쫓아 내고 […]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 이하, 참조: 20절). 사도행전은 예수의 표징행동이 제자들을 통해 계속되는 것을 언어적인 표시로서도 분명히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기적과 표징”을 통해서 예수를 인정하셨고(사도 2,22) 지금은 “기적과 표징”이 “사도들의 손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도 5,12, 참조: 사도 2,43; 8,13; 14,3; 15,12). 그러나 사도들은 자신들을 통해 “기적과 표징”을 일으키도록 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 자신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사도 14,3). 그 단적인 예는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일어난 불구자의 치유는 부활하신 예수의 능력을 나타내는 분명한 표징이 되었다 (사도 3,1-16; 4, 10.16).


그러나 특별한 능력의 업적만이 표징인 것은 아니다. 이상적으로 묘사된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삶 전체가 – 사도들의 가르침의 고수, 재산의 공유까지 이르는 상호 간의 돌봄, 공동의 기도, “기쁨과 단순함” 속에 이루어진 공동의 식사 – 신앙에로 이끄는 표징이고 “풍성한 은총”의 場이었다(사도 4,33).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 생활의 여러가지 요소들은 빵을 나누는 예식 안에 종합되어 있는데(사도 2,42.46), 이는 초대교회가 예수께서 실천하신 식사 공동체의 표징을 받아들이고 계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빵을 나눔”이란 용어가 예수의 행동에 사용됨: 마르 6, 41: 8,6; 14,22; 1 고린 11, 24; 루가 24, 30.35,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실현에 사용: 1 고린 10, 16; 사도 2, 42.46; 20, 7; 27, 35). 이 예식은 교회 공동체의 중심적인 표징 행동이 된다.


그 외에도 신약의 공동체에서 예수의 활동을 반영하는 다른 예식들이 증언된다:


– 안수(마르 16,18; 사도 6,6; 8,17; 9,12;13,3;19,6; 히브 6,2; 1 티모 5,22; 2 티모 1,6; 참조: 예수께서 행하신 안수: 마르 5, 23: 6,5: 8, 23; 10,16; 루가 13,13). 그러나 안수의 경우 그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치유의 행동 (마르 16,18), 성령의 전달 (사도 8,17), 특별한 봉사직에로의 임명(사도 6,6: 1 티모 5,22)에 안수가 행하여 졌다.


– 도유 (마르 6, 13; 야고 5,14)와 발을 씻음 (요한 13,1-15).


– 세례 (마르 6,16; 마태 28,19; 사도 2,38-41; 8,12 이하; 8,16; 8,26-40; 9,18; 10,47 이하; 16,15; 18,8; 19,5; 22,16; 로마 6, 1-14; 1 고린 1, 13-17; 12,13; 갈라 3,27; 에페 4,5; 골로 2,12; 히브 6,2; 1 베드 3,21; 요한에 의한 예수의 세례에 대해; 마르 1,9-11; 마태 3,13-17; 루가 3,21 이하). 신약 성서에서 가장 분명하게 증언되고 신학적으로 숙고된 것은 세례와 성체성사이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표징이다. 그리고  부활 이후에 예수는 사도들을 통한 여러 가지 표징 행동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교회 공동체는 부활하신 예수를 드러내는 표징이 되고, 교회 공동체의 개개의 행동들은 예수를 선포하고, 그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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