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성서적 기초(요한의 세례)

 

2.4. 요한의 세례




그리스도교의 세례는 세례자 요한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 요한은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선포하였는데, 이 배경에서 철저한 회개와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마르 1,4)을 요구하였다. 공관복음서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추종자들이나 적대자들 모두 요한을 “세례자”(마태 11,11 이하; 14,2.8; 16,14; 17,13; 마르 6,25; 8,28; 루가 7,20.33; 9,19)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그의 이름은 그의 활동과 뗄 수없이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유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반복되는 정화의 세례와는 달리 단 한번에 그쳤다. 이는 그에 의해 선포된 종말론적 상황의 유일회성과 그에 상응해서 요구된 회개의 철저성이 드러낸다. 두번째의 차이점1)은 세례 지원자 스스로가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이는 요한의 세례가 단지 지원자 자신의 회개 원의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허락된 단 한번의 기회임을 드러내는 표시임을 암시해 준다.예수의 제자들과 후대의 신약성서에 나타난 공동체에게는 요한의 세례가 대단히 중요하였는데, 왜냐하면 예수 스스로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마르 1,9-11 병행귀절).




2.5. 요한에 의한 예수의 세례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이는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논리적으로 곤란함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4복음서 모두에서 증언되었다: 예수의 제자들과 요한의 제자들의 경쟁(마르 9,14 병행구절; 루가 11,1; 요한 3,22-25; 4,1-3)에서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세례자 요한의 우위성에 대한 논리로 이용될 수 있었다 – 세례자가 세례받은 이보다 더 높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세례가 성서에 증언된 것을 본다면, 이는 역사적으로 확실함을 확인하는 것이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에서 두 가지 점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요한과 마찬가지로 예수도 다가온 종말을 기다렸다는 것과 예수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백성과 연대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예수 제자들의 신앙적인 해석, 즉 그리스도론적인 해석이 첨가된다.


세례와 관련된 그리스도론적인 해석은 세례자 요한과의 예수 사이의 우위권 문제 외에(마태 3,14; 요한 1,19-27)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예수가 율법의 지배하에 놓은 사람들과 연대를 취하였다 것이다: 메시아는 자신을 죄인들과 분리시키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한다(마태 3,15). 다른 하나는 예수가 파견됐다는 것인데, 이는 복음사가들이 세례기사를 소명기사로 구성함으로써 나타난다: 예수는 자신을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로써 체험하고, 그 즉시 하느님의 영이 예수에게 임하고 그를 파견한다.




2.6. 예수 스스로 세례를 주었는가?




공관복음서에서는 부활 이전의 예수가 (세례자 요한과는 달리) 스스로 세례를 주었다거나 혹은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위탁했다고 전하는 구절이 아무데에도 나타나지 않는다.2)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요한복음은 예수가 요한의 세례활동과 병행해서 유대 땅에서 세례를 주었다고 하고(요한 3,22), 나중에는 조금 변형해서 “예수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베풀었지만”(요한 4,2)이라고 전한다. 이 차이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는 성서학적으로 논란되고 있다. 공관복음서에 예수가 세례를 주었다는 언급이 없는 것은 예수의 제자 파견 명령문의 내용으로 해서 더 설득력을 얻는다: 제자들은 다가온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나병환자들을 깨끗이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고, 죽은 이들을 일으키도록 파견되었다(마태 10,8); 그렇지만 그들은 아무런 예식도 위탁받지 않았다. 이에 따라 요한복음의 두 구절은 교회가 부활 이후의 세례 실천을 부활 이전의 예수의 행동에 근거지우려 하였다는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성서학자들은 요한 3,22을 예수의 역사적인 실천에 대한 기억이라고 보고 있다. “예수가 세례자의 제자나 동료로 간주되었던 예수 활동의 알려지지 않은 초기에” 그 스스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얼마 후에는 세례자에게서 떨어져 나오게 되고 세례를 더 이상 주지 않았다.3) 이런 견해는 예수의 실천과 부활 이후의 교회의 실천을 좀 더 가깝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복음선포와 그리스도교회의 세례실천과의 역사적 연계성이 조금도 끊임없이 이어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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