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성서적 기초(그리스도교의 세례-신학적인 해석2)

 

2.7.2.5. 세례 받은 모든이는 함께 속하여 있고 같은 품위를 지닌다.


“그 날에 (믿는) 사람들이 삼천 명 가량 늘어났다”(사도 2,41)는 말로 성령 강림 직후의 세례에 대한 기사는 끝을 맺고 초대교회의 생활을 묘사하는 데로 넘어간다. 루가는 공동체 생활의 4가지 구성 요소를 짧게 언급하고 (사도들의 가르침, 공동생활, 빵을 나눔 그리고 기도), 재산의 공유를 강조하여 내세운다(사도 2,44 이하). 이는 세례를 통해서 공동체가 형성되고 자라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은 숫자적인 크기가 아니라 세례 받은 이들 사이의 굳건한 결합이다.


이를 잘 드러내는 것이 1고린 12,12-17인데, 여기에서 바울로는 세례를 통해서 사회적인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고 강조한다: “실상 우리는 모두 한 영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1고린 12,13). 신앙과 세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이 결합은 모두를 차별없이 하느님의 자녀와 약속의 상속자로 만든다: “사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들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이 누구나 그리스도를 (새옷으로)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유대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으며, 노예도 없고 자유인도 없으며, 남성이랄 것도 여성이랄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 3, 26-28). 이 구절 이전에는 율법의 지배와 감시에서 해방된 것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세례를 근거로 해서 모든이가 같은 품위를 지닌다 함은  자유를 새롭게 체험하는 것이다. 에페소서에도 이와 비슷하게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근거 지운다: “여러분의 부르심을 보아도 여러분이 하나의 희망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몸도 하나요 영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입니다. 모든 이의 아버지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4-6). 공동체 안에서 여러 가지 임무1)을 위해 구분하는 것은 근본적인 동일성에 비해서 이차적인 중요성을 띤다.




2.7.2.6. 새로운 삶에로의 탄생: 선물인 동시에 과제


사도행전은 우선적으로 세례를 통해 선사된 성령의 사회적인 작용, 공동체 안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해 다룬다. 요한복음은 이 보다는 개인 안에서의 작용을 더 주목하면서 새로운 삶에로의 “탄생”에 대해 말한다. 하느님의 영이 인간을 개조하고 새로운 마음을 주고, 그래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겉으로만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듣고, 자명하게 실천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은 구약의 예언자들과 당시의 유대교를 통해서 잘 알려진 생각이다(에제 11,19; 36,25-28; 이사 44,3; 예레 31,33). 인간의 이러한 변화를 요한복음은 “영으로부터 새로 난”(3,6.8), 혹은 “위로부터 (새로) 난”(3,3.7)이라고 일컫는다. 이 “탄생”은 종말의 구원에 참여하고,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기 위한 전제조건이다(요한 3,3; 3,5 비교). 요한복음에서 세례는 이런 맥락에 속한다: “누구든지 물과 영으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요한 3,5).


출생이라는 말마디는 “누구든지…않으면”이라는 절박한 표현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는 출생이 전적으로 수동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모순이 아닌가? 성령의 선물을 명령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처럼 모순으로 보이는 것은 직설법과 명령법 사이의 긴장에서 출발하면 풀리게 된다: “진리”는 “실천되어야” 한다는 요한 3,21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선물은 받아들여져야 하고, 삶은 살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실현하고자 받아들이는 행위가 바로 신앙이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것을 디도서에서도 만나게 된다: 디도는 자신의 공동체가 “모든 사람을 언제나 온유하게 대하도록”하는 임무를 일깨워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삶이 결정적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실상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고…밉살스럽게 굴고 서로 미워하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재생의 목욕과 성령에 의한 쇄신으로 구원하셨습니다”(디도 3,1-5).


세례는 우리가 새로 태어난 것처럼 되도록 하는 재생의 목욕이고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근본적인 전환점이다. 이 전환은 우리 자신의 업적이 아니고 하느님의 선물이고, 성령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새로운 삶의 형태로 실현되어야 한다.




이 글은 카테고리: 가톨릭교리자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