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레오 3세 교황 Leo Ⅲ. 795~816
레오 3세 교황의 전임자 하드리아노 1세는 로마와 프랑크 제국의 유대 관계에 기초를 놓았다. 795년 12월 26일 교황 하드리아노 1세의 장례식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교황 레오 3세는 교황 선출 후, 즉시 성 베드로의 무덤 열쇠와 로마의 기를 충성 서약의 표지로 칼 대제에게 보냈다. 하지만 로마의 귀족들은 교황의 이러한 처사에 동의하지 않았다. 바로 그 때문에 봉기가 일어났다. 교황의 적대자들은 레오 3세를 윤리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799년 4월 하드리아노 1세 교황의 조카를 영접하는 행렬 도중, 교황 레오 3세가 기습을 받아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교황 레오 3세는 칼 대제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파더본(Paderborn)으로 도피하였다. 칼 대제는 교황의 적들이 제기한 고발의 내용을 심리하기 원하였다. 그래서 칼 대제는 로마로 갔다. 고발 내용에 대한 심리는 800년 12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작되었으나, 교황의 범죄 사실을 입증해 주는 어떤 증인도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심리는 계속될 수 없었고, 교황을 법정에 세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말았다. 교황 레오 3세는 공개적인 서약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천명하였다.
800년 성탄절에 레오 3세 교황은 칼 대제를 황제로 대관시켰다. 칼 대제는 원래 자신의 아들을 위해 왕위 도유식만을 주재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하지만 교황은 성탄날 미사에서 값진 왕관을 칼 대제에게 수여하면서 로마인들의 황제로 선언함으로써 칼 대제를 놀라게 하였다. 성탄절이 지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칼 디제는 레오 3세 교황의 적대자들을 재판에 회부하여 그들에게 불경 대역죄와 봉기를 획책한 죄목으로 사형 언도를 내렸다. 그러나 레오 3세 교황의 청원으로 그들에게 추방의 은전을 베풀었다. 교황 레오 3세는 816년 6월 13일 서거하였고, 그의 서거일이 바로 전례 기념일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