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우르바노 4세 교황 Urban Ⅳ. 1261~1264
1255년부터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 재직하던 자크(Jacques Pantaleon)는 비테르보(Viterbo)에서 약 3개월간 계속된 봉쇄 교황 선거 – 이 선거에는 8명의 추기경이 참석하였다 -를 통해 1261년 8월 29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교황 우르바노 3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 정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재임 초기에는 비테르보에서 정주하다가 나중에는 오르비에토(Orvieto)에서 정주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동방 교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열성을 보였다. 교황으로 선출되고 난 후 즉각 교황 우르바노 4세는 동방에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라틴 제국을 도울 것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의 황제 미카엘 3세가 교황에게 일치를 위한 회담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황제 미카엘 3세는 교황의 사법적 수위권을 인정하였고, 니케아 공의회의 신앙을 고백하였으며 성사가 7개라는 것도 인정하였다. 그리고 공의회를 소집하여 아직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던 다른 문제를 논의하자는 구상도 밝혔다. 그래서 일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264년 10월 2일 교황 우르바노 4세의 서거로 이 문제는 다시금 미해결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프랑스의 국왕 루이 9세에게 양도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루이 9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교황 우르바노 4세는 1264년 8월 15일 루이 9세의 동생샤를(Karl von Anjou)과 계약을 체결하여 시칠리아를 양도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1264년 성체 성혈 축일을 교회의 전례에 도입하였고, 토마스아퀴나스에게 이 축일의 전례를 창작하도록 위임하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