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바노 6세 교황 Urban 6.

 235. 우르바노 6세 교황  Urban Ⅵ.  1378~1389

교황 그레고리오 11세 – 아비뇽의 유배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로마로 귀환하였다 – 서거 후 75년 만에 로마에서 교황 선거가 있었다. 로마인들은 프랑스 출신이 교황으로 선출될 경우 다시금 아비뇽으로 돌아가게 될까 봐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출신이나 이탈리아 출신 가운데 교황이 선출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1378년 4월 8일에 개최되었던 봉쇄 교황 선거장에는 일단의 무장병들이 침입하였으나 가까스로 이들을 선거장으로부터 몰아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선거가 오래 걸릴 것이라고 추측하였으나, 로마인들의 압력으로 추기경들은 선거 첫째 날 벌써 바리(Bari)의 대주교 바르톨로메오(Bartolomeo Prignano)를 교황 – 우르바노 6세 – 으로 선출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6세는 나폴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추기경단에 속하지 아니하는 인물로서 교황에 선출된 마지막 교황이었다. 교황 우르바노 6세에게 교황직 수락 여부를 묻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군중들은 선거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러한 군중들을 달래기 위해 추기경들은 로마 출신의 연로한 추기경 테발데스키(Tebaldeschi)를 교황 선출자로 소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소개는 악의가 없는 속임수였다는 사실로 판명되고 우르바노 6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군중들은 만족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6세의 착좌식은 1379년 4얼 9일에 거행되었고, 대관식은 4월 18일에 개최되었다. 그런 후 교황 우르바노 6세와 몇몇 추기경들 사이에 불화가 발생하자 추기경들은 우르바노 6세의 교황 선출을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그 이유는 교황 선거가 강요에 의해 진행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추기경들은 교황의 허락하에 로마를 떠나 아나니로 갔으며, 그곳에서 우르바노 6세가 재선거를 통해 교황으로 선출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교황직을 퇴위해야 한다는 의견을 두고 논의가 있었다. 프랑스 출신의 추기경들은 교황 우르바노 6세의 교황 선출을 무효라고 주장하였고, 끝내는 1378년 9월 20일 클레멘스 7세를 대립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하지만 교황 우르바노 6세에 대한 아무런 적법한 소송도 제기되지 않았고, 또 교황 우르바노 6세 자신은 자신의 선출이 적법하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분열의 양상이 노골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두 교황 가운데 어느 교황이 적법한 교황인지를 확실하게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곧 전투적인 대결 상황으로 이어졌고, 교황 우르바노 6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아비뇽으로 도피하였고, 그곳에서 새로운 교황청 기구를 조직하였다.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는 29명의 추기경들을 임명하였으나 대부분의 지명자들은 추기경 서임을 수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 두 명의 교황과 두 개의 교황청이 동시에 공존하게 되었고, 서방 교회의 분열은 현실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열은 약40년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교황권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만은 점점 고조되었다. 두 교황은 엄청난 재정이 소요되는 교황청을 따로 운영하였고, 이러한 재정의 소요는 신자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두 교황은 각기 제후들의 지지를 요청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러한 요청과 관련해서 제후들은 교황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요구들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나폴리를 중심으로 해서 교회 국가 내부에서는 전투가 발생하게 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6세에 저항하는 모반이 시도되었고, 이 모반에는 몇몇 추기경들도 가담하였다. 하지만 교황 우르바노 6세는 자신에 대한 모반을 무참하게 진압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6세는 6명의 추기경들을 체포하여 참살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결국 교황에 대한 불만을 초래하였고 그 결과 다수의 추기경들은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지지하는 편으로 선회하였다. 몇몇 국가들은 교황 우르바노 6세를 지지하였으나, 다른 국가들은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지지하였다. 일부 국가들은지지 의사를 유보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6세는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와 그 지지자들에게 파문의 처벌을 내렸고, 이에 대응해서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 역시 교황 우르바노 6세와 그 지지자들에게 파문의 처벌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교 전체가 파문의 처벌을 받은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두 교황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산시키기 위해 주교들을 마구 임명하였고 교회의 직책들을 남용하였다. 이러한 분열은 수도회 내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교황 우르바노 6세는 1389년 10월 14일 로마에서 서거하였다.


이 글은 카테고리: 예비신자교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