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레오 10세 교황 Leo Ⅹ. 1513~1521
교황 레오 10세는 원래 이름이 조반니(Giovanni dei Medici)였고, 1513년 3월 11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475년 12월 11일 피렌체에서 출생하였으며, 17세의 나이에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매우 박학하고 예술을 애호하는 인물이었다. 독일,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 당시의 매우 저명한 인물과 친교를 나누었다. 그는 아픈 몸으로 교황 선거에 임하였다. 교황 레오 10세는 선임 교황 율리오 2세의 정치노선 – 프랑스와 적대 관계를 유지하는 -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아울러 교황 레오 10세는 제5차 라테라노 공의회를 속행하였다. 하지만 교회의 개혁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기대했던 바를 실현시키지는 못하였다.
추기경단에서는 추기경 알폰소(Alfonso Petrucci)의 주도하에 교황 레오 10세를 독살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음모는 발각되었고, 알폰소 추기경은 처헝당했으며, 추기경의 추종자들은 모두 그 직책을 박탈당하였다.
교황 레오 10세의 재임 기간 중에 교황 율리오 2세가 베드로 대성전의 건축을 위해 공표하였던 대사령을 거부하는 사건이 루터의 주도하에 발생하였다. 1520년 6월 15일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에게 파문의 처벌로 위협하는 칙서를 발표하였고, 이 칙서는 루터가 주장하는 41개의 명제를 단죄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교황 레오 10세는 1521년 12월 1일에 서거하였다. 역사가들은 교황 레오 10세에 대해 성직 매매 행위, 사치스러운 생활, 교회 재산의 낭비 등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독일과 유럽 지역에서 파생되었던 종교 개혁과 관련해서 신학적으로 정통하며 교회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 교회의 지도자로 선출되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점점 확산되어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