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4세 교황 Paul 4.

 262. 바오로 4세 교황  Paul Ⅳ.  1555~1559

교황 바오로 4세는 원래 이름이 잔피에트로(Gianpietro Caraffa)였으며, 1555년 5월 23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나폴리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1476년에 출생하였으며, 키에티(Chieti)의 주교와 브린디시(Brindisi)와 나폴리의 대주교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스페인 주재 교황 대사직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524년 가예타노(Kajetan von Thiene)와 함께 테아티노(Theatiner) 수도회를 창설하였고, 초대 총장직을 역임하였다. 1536년에 추기경으로, 그리고 종교 재판소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553년 이래 오스티아의 주교 추기경으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추기경단의 단장으로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교황으로 선출될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80세였다. 교회의 개혁을 갈망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교황 선출을 환영하였다. 하지만 교황 바오로 4세는 지나친 엄격주의와 친인척 중용주의로 주위의 반발에 직면하였으며, 심지거 서거 무렵에는 백성들이 그를 반대하여 봉기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종교 재판소의 운영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를 보였고, 고위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서의 인품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교황 바오로 4세는 도서 검열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엄격하여, 1559년에 첫 번째 금서 목록을 발표하였다. 교황 바오로 4세는 특히 자신의 조카 카롤로 카라파(Carolo Caraffa)를 중용하였으며, 그 결과는 카롤로의 직무 남용과 직책의 박탈로 이어졌다. 이는 교황 바오로 4세의 교황 직무 수행에도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미쳤다. 교황 바오로 4세는 교회의 개혁을 목적으로 소집되었던 트리엔트 공의회의 속개를 거부하였고, 1559년 8월 18일에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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