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시는 하느님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로마 1,19-20)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 “저 사람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알기 어렵거늘 하물며 오관으로는 전혀 감각할 수 없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직접 또는 간접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분과 대화를 나룰 수 있는 것이다.

1. 간접적 啓示(자연적 계시)
인간은 하느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아니라도 과학적인 방법론을 따라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알 수 있다.

가. 하느님은 대자연과 우리의 삶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신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스러움에 경탄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은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고 우주의 위대함에 새삼 탄복한 경험을 가진 자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대자연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어떤 위대한 존재를 생각하게 해 준다. 따라서 이 대자연을 만들고 교묘히 섭리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 이성(理性)의 논리적인 귀결이다. 시편 저자는 이미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줍니다”(시편 19,1)라고 노래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만물의 근원이시며 목적이신 하느님이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에 의해서 창조물을 통하여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다”(로마 1,20참조)는 것을 인정한다.(계시헌장 6항)>고 명백히 가르치고 있다.
대자연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극히 미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에 우리의 이성은 위대한 힘을 부르며, 우리의 유한성은 무한한 존재를 갈구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극히 미소하고 약한 존재임을 자인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인생이 허무한 것, 무의미한 것으로 끝나 버린다면 이 어려운 삶의 길을 눈물 흘리며 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리가 택해서 얻은 삶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삶을 준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게 끝나 버릴 수만은 없는 것이라면 무한한 존재인 하느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 하느님은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자기 안에 양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교육 정도나 생활 환경에 따라서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한하고 완전한 선을 지향하는 우리 양심의 소리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저 유명한 러시아의 문호 도스또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아무도 모르게 완전 범죄를 자행한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끝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야 만다. 이처럼 인간의 양심은 언제나 선을 지향하며 각 사람의 내부에서 그의 행동을 제약하고 규제한다. 사도 바울로는 양심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성에 따라서 율법이 명하는 것을 실행한다면 비록 율법이 없을지라도 그들 자신이 율법의 구실을 합니다”(로마 2,14).
그러면 내가 어떤 잘못을 범했을 때에 끊임없이 나를 경고하고 괴롭히는 양심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디서 온 것인가. 이 신비로운 양심이야말로 나를 심판하는 소리이며 내 안에 새겨 주신 나보다는 훨씬 더 위대한 존재, 곧 하느님의 소리임을 우리는 체험하게 된다.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인간은 양심 속 깊은 데서 법을 발견한다. 이 법은 인간이 자신에게 준 법이 아니라 인간이 거기에 복종해야 할 법이다…중략…이 법에 복종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며 이 법을 따라 인간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양심은 가장 은밀한 안방이요, 인간이 저 혼자서 하느님과 같이 있는 지성소이며 그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사목헌장 16항)
이와 같이 우리의 이성은 하느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없이도 간접적으로 대자연이나 우리의 삶, 양심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하시는 분이고 또 나와는 직접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분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한 간접적인 계시만으로는 부족하고 직접적인 그분의 계시가 절대 필요하다.

2. 직접적 啓示
하느님은 우리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명백히 드러내 보여 주시기 위해서 인간의 역사 안에 개입하셔야 했고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셔야 했다. 하느님은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브 1,2 참조) 이 하느님의 말씀을 수록한 책이 신구약 성경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직접적인 계시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가. 구약시대
구약의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이 될 것과 새로운 땅과 많은 자손을 약속하시고(창세 15,5-18 참조), 당신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해 주시며(출애 14장 참조), 그들에게 법률을 주시고(출애 31,18 참조), 그 후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신다. “야훼께서는 마치 친구끼리 말을 주고 받듯이 얼굴을 마주 대시고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출애 33,11), “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에페 1,8-9)
구약의 하느님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구체적인 개개인과는 서로 무관한 철학적 신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이시며(출애 3,6참조)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여 당신 자신을 역사 가운데서 구세주로 계시하시는 하느님이다. 구약에서 특전을 받은 인물들은 모두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고통이 흔히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게 해 주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예언자 호세아, 예레미아 등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나. 신약시대
하느님은 마지막으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신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로 나타난 하느님의 계시자이자 하느님의 말씀 자체임을 우리에게 뚜렷이 제시해 주고 있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시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요한 1,1-14)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집중되고 이로써 하느님의 말씀은 인격화(人格化)되셨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고 계신 분”(요한 6,68)일 뿐만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 자체임을 교회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하느님의 말씀은 마치 그 옛날 영원하신 아버님의 ‘말씀’이 연약한 인성을 취하시어 인간이 되셨듯이 인간이 말이 되셨다.>(계시헌장 13항)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은 죽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셨다. 그런데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그분이 택하신 사도들을 통해서도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오늘날에는 교회가 이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데 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세상 마칠 때까지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확실히 알고, 우리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현대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인간의 진보를 억압하는 소위 백해무익한 신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으로써 나에게 직접 대면하고 계시며 당신 자신을 열어 보이시는 전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우리는 알고 고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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