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대한 이해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개혁과 쇄신을 부르짖는 소리가 높다. 이에 못지 않게 교회 안밖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쇄신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고, 또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교회는 끊임없이 쇄신되어야 한다. 이러한 쇄신이 없다면 교회는 쇠퇴하게 되며 세상에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쇄신하고 개혁해야 한단 말인가?


현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테마들 가운데 하나는 ‘가난의 테마’일 것이다. 이 테마는 세기를 거듭하면서 교회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어왔고, 현대에는 그리스도교적인 영성의 중심과제의 하나로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1) 즉 현대는 이 세계에 비참과 빈곤이 얼마나 광범위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지를 의식하고, 동시에 ‘가난’을 그리스도인의 실존적 가치의 하나로 재발견한 것이다.2)


오늘날 점점 부유해져 가는 교회는 ‘가난한 교회, 봉사하는 교회’로서의 본 모습과 그 생명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부유한 교회는 결코 가난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다. 그러한 교회는 가난한 이들 안에 현존해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고 그들을 통하여 다가오시는 그분을 맞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가난은 영적 쇄신의 원천으로서 그리스도교인의 신앙과 삶의 자세를 식별하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3) 그런데 문제는 가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의 물질적 측면을 강조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가난의 정신적 측면에 치중하기도 한다. 오늘날 참된 가난을 사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수세기 동안 가난에 대한 가르침이 그리스도교인들을 통하여 거짓으로 꾸며져 왔고 오해되어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그리스도교가 이처럼 형식에 기울고 위선에로 흐른 원인은 바로 가난의 그릇된 해석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다.4)


그러면 그리스도교에서의 가난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오늘날 가난하게 사는 것인가? 따라서 본 소고(小考)는 그리스도교적 가난의 참된 의미와 그 실천 방향을 모색해 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먼저 제 1장에서는 가난이라는 중심 단어의 이해를 위해 가난이라는 말의 애매모호성을 살펴볼 것이며, 제 2장에서는 성서에서의 가난을 살펴본 후 성서적 가난의 귀결이라 할 수 있는 복음적 가난을 살펴보고 나서, 제 3장에서는 초대교회에서의 가난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제 4장에서는 현대 신학자들, 특히 해방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신학적인 관점에서 가난의 여러 측면들을 고찰해볼 것이며, 끝으로 제 5장에서는 이 모든 고찰을 토대로 오늘날 가난을 과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가난의 실천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그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카테고리: qqqnewsbuss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가난에 대한 이해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개혁과 쇄신을 부르짖는 소리가 높다. 이에 못지 않게 교회 안밖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쇄신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고, 또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교회는 끊임없이 쇄신되어야 한다. 이러한 쇄신이 없다면 교회는 쇠퇴하게 되며 세상에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쇄신하고 개혁해야 한단 말인가?

    현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테마들 가운데 하나는 ‘가난의 테마’일 것이다. 이 테마는 세기를 거듭하면서 교회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어왔고, 현대에는 그리스도교적인 영성의 중심과제의 하나로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1) 즉 현대는 이 세계에 비참과 빈곤이 얼마나 광범위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지를 의식하고, 동시에 ‘가난’을 그리스도인의 실존적 가치의 하나로 재발견한 것이다.2)

    오늘날 점점 부유해져 가는 교회는 ‘가난한 교회, 봉사하는 교회’로서의 본 모습과 그 생명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부유한 교회는 결코 가난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다. 그러한 교회는 가난한 이들 안에 현존해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고 그들을 통하여 다가오시는 그분을 맞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가난은 영적 쇄신의 원천으로서 그리스도교인의 신앙과 삶의 자세를 식별하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3) 그런데 문제는 가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의 물질적 측면을 강조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가난의 정신적 측면에 치중하기도 한다. 오늘날 참된 가난을 사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수세기 동안 가난에 대한 가르침이 그리스도교인들을 통하여 거짓으로 꾸며져 왔고 오해되어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그리스도교가 이처럼 형식에 기울고 위선에로 흐른 원인은 바로 가난의 그릇된 해석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다.4)

    그러면 그리스도교에서의 가난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오늘날 가난하게 사는 것인가? 따라서 본 소고(小考)는 그리스도교적 가난의 참된 의미와 그 실천 방향을 모색해 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먼저 제 1장에서는 가난이라는 중심 단어의 이해를 위해 가난이라는 말의 애매모호성을 살펴볼 것이며, 제 2장에서는 성서에서의 가난을 살펴본 후 성서적 가난의 귀결이라 할 수 있는 복음적 가난을 살펴보고 나서, 제 3장에서는 초대교회에서의 가난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제 4장에서는 현대 신학자들, 특히 해방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신학적인 관점에서 가난의 여러 측면들을 고찰해볼 것이며, 끝으로 제 5장에서는 이 모든 고찰을 토대로 오늘날 가난을 과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가난의 실천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그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