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 내리던 날 밤, 수척한 모습의 한 젊은 여인이 사제관을 찾아 왔다. 불룩 솟아 오른 배는 한 눈에도 그녀가 임산부임을 짐작케 했다. 빛을 피하려는 듯이 백열등을 등지고 앉은 그 여인은 울면서 말을 힘겹게 꺼냈다.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하게 되었노라고. 그리고는 말했다.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이 아기를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고. 자신을 강간한 그 파렴치한 놈을 생각하면 뱃속의 아기마저 미워진다고. 그 아기를 낳아도 아비 없는 유복자(?)를 미혼모인 자신이 어떻게 키울지 자신이 없으며, 아기가 자신과 그 흉악한 놈의 악연을 이어주는 끈이 되는 것 같아 몸서리쳐진다고. 솔직히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인생이 먼저 걱정된다고….
그렇게 한 마디 한 마디 절규하듯이 내뱉은 그녀는 온 몸에 남은 힘을 슬픈 두 눈에 모아 내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 차례이다. 그녀가 비록 ‘낙태’1)라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이런 경우에는 낙태를 해도 좋다는 면죄부를 사제에게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 동안 그녀가 겪은 정신적, 육체적 고초를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