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사회주의자의 견해
‘신성한 것을 모독하는 문학,연극,살롱의 화제에 있어서는 부정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너그럽게 판단하고 있다.따라서 간통은 삶의 도상에 있어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가볍게 취급되어 희생자의 고뇌와 사회적인 해악을 드러내 보이지 않도록 한다.그러면서 괴로움은 사실인것으로, 간통을 익살스럽게 보이는 것도,모든것이 많은 사람의 고뇌를 숨겨 버리는 가면을 씌우고자 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흥업.환경.동정의 유행 같는 것에 의해서 간통을 너그럽게 판단하고 고뇌쪽을 묵살해 버려 흥미 본위로 다루고 정당한 앙갚음을 강조하여, 풍속을 부패시키는 분위기와 인간의 양심은 입으로는 엄하게 비난하면서도 이 비난의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학교의 도덕교육은 간음의 부정에 대해서 강압적 금지와 비난을 가르치고는 있지만 설득력있는 이론으로 그 정당성을 설명해주지는 않고 있고 교육자도 그의 침묵이 후에 어떠한 손실을 가져다 주는지 반성해 보지 않고있다. 삶의 어려움에 대한 준비의 결핍,도의적 신념에 대한 합리적 뒷받침의 결핍은 성인이 된 다음의 얽히고 얽힌 여러문제 앞에 그 유치한 무력 상태를 드러내 놓고야 만다. 성격도야를 단념하고 만 교육가는 그 자신이 감히 기도할 만한 견식과 용기마저도 없는 어렵고도 까다로운 도야를 내일의 가정의 교육가에게 맡기고 있다.
오늘날 간음에 대해서 사회가 취하는 너그러움은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다소의 이유가 없지 않아 있다. 일반의 관용은 간음의 기회와 실행을 현저하게 증가시키고 있다. 따라서 남성이 또는 여성이 사랑놀음을 반복하는 데 용기를 돋다주고 버림을 받은 남편 또는 이내의 잔혹한 무언의 고뇌 원만치 못한 가정에서 살아야만 하는 청소년의 피해를 가중 시키고 있다. 성의 방종은 유익하고도 필요한 재정을 소모시켜서 파렴치한 자를 이롭게 하고 살림과 자녀에게 손해를 입힌다.
간음은 사회의 해리와 비참의 누룩이다.따라서 견식있는 세론은 어떠한 사정이 있든지간에, 온갖 간음을 뚜렷하게 배척하는 인간다운 신념과 교육의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항상 간음을 배척해 왔는데,견식 있는 사회학자는 이 태도에 찬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