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종교

현재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신흥종교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으면서 저마다 성장과 신도 증가를 꾀하고 있다. 이들의 수효는 수백개에 이르고 있으며, 점차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건전한 종교로 발전하는 종단들도 적지 않지만, 신흥종교의 공통 교리인 말세 임박설과 교주에 대한 신격화 등으로 인해 사회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자주 나타난다. 예를 들면 시한부 종말론과 기존 사회질서 거부에 따르는 직장·학업·재산 및 가정생활의 포기, 신도들의 열광에서 파생하는 집단 히스테리와 성 문란 행위, 공동생활과 집단 폐쇄성이 빚어내는 폭력 행위와 노동력 착취 등은 신흥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다.
대부분의 신흥 종교들은 역사가 짧기 때문에 기성종교들보다 교리나 의례(儀禮)의 체계화
정도가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교리나 의례보다는, 현세기복(現世祈福)이나 신비체험
을 약속하거나 신도들간의 강한 유대를 강조하는 방법으로 주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접근한다. 따라서 신흥종교 신도들 가운데는 가난에 지친 사람들, 오랫동안 불치병
이나 난치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마음에 큰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 사회적인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대부분은 현실 세계에서
당하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또한 치유와 위로와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기성종교를 찾았던
경험이 있다.
다른 계통보다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그리스도교계 신흥종교들은 성서의 배경이
나 종합적 문맥은 간과한 채, 그 내용을 자구적(字句的)으로 해석하는 방법으로 선교하고 있
다. 특히 이들은 가톨릭 신자들을 우선적인 선교대상으로 삼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계 신흥종교의 신자들 가운데는 가톨릭에서 개종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
려지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세계화·개방화의 물결에 따라 외국으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신흥종교들이
유입되고 있다. 이러한 외래 신흥종교들 가운데는 ‘미확인 비행물체'(UFO)나 외계인을 신봉하
는 신흥종교를 비롯하여, 종교시설이나 교계제도 또는 집단적인 예배의식을 갖지 않고 오직
컴퓨터 네트워크로만 연결되는 이른바 ‘사이버 릴리전'(cyberreligion) 등도 포함된다. 이러한
신흥종교들은 예전의 신흥종교들과는 달리, 주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확산되는 경향을 나타낸
다.
현대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크게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나 의식구조도 크게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된 생활방식이나 종교적 욕구에 맞추려는 신흥종교
들이 대량으로 출현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신흥종교의 발생과 확산은 현대적 현상이며 세
계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한다고 해서 진리 자체가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하고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많다. 교회는 이 변하지 않는 것들이 궁
극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 박혀 있으며, 그분을 과거에도 오늘도 그리고 또 영원히 존재
하시는 분으로 믿고 고백한다. 그러기에 교회는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적절히 대응하기를
권유하면서도, 그에 맞추어 진리 자체를 바꾸려는 운동이나 흐름을 단연코 배격한다.
신흥종교의 발생과 확산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나 그리스도교 진리의 절대성을 손
상시킴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또한 그것은 교회 재일치 운동에도 저해가
된다. 우리 나라 신흥종교의 대부분이 사회에서나 기성종교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확
산된다는 사실은 그들에 대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좀더 큰 관심과 포용 그리고 나눔이 요구된다. 최근 교회가 대형화. 중산층화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음에 비추어,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교회의 쇄신과 도 연결되는 것이
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신흥종교의 위협에 대처해 나가려면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성서에 관
한 지식과 함께, 오랜 종교체험과 역사체험을 통해 쌓아온 교리와 신학에 대한 지식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신앙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에서 출발
하지만, 그것을 건강한 신앙으로 키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노력과 교
회 공동체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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