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해방과 교회발전-콘스탄띠누스의 밀라노 포고령(佈告令)


27. 종교해방과 교회발전




27.1. 콘스탄띠누스의 밀라노 포고령(佈告令)


3백년간 박해를 받아오던 그리스도교는 콘스탄띠누스(280-337) 황제가 313년 밀라노에서 반포한 포고령에 의해 종교해방을 얻게 되었다.  이 포고령은 단순히 교회가 더 이상 박해를 받지 않게 되었다는 차원을 넘어 교회가  인정받은 교회로 그리고 후에 로마제국의 국교(392년)가 되면서 여러 방면에서 놀라운 발전을 하게되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종교해방을 얻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콘스탄씨우스 클로루스와 어머니 헬레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의 로마황제는 디오끌레시아누스였는데 제국이 워낙 광대했기 때문에 황제 자신은 니꼬데미아에 머물면서, 동쪽 지방은 갈레리우스가 서쪽지방은 콘탄띠누스의 아버지인 콘스탄씨우스가 통치하게 하였다. 디오끌레씨아누스 황제는 305년 1월 5일 퇴위하면서 예상과는 달리 갈레리우스를 제 1정제(正帝)로, 콘스탄씨우스를 제 2정제로 선포하였다.  이듬해인 306년 7월 25일 콘스탄씨우스가 사망하자 그의 군인들은 아들 콘스탄띠누스를 황제로 추대하고 세력을 확장하여 나갔다. 312년 봄, 갈레리우스가 사망하고 그의 뒤를 이어 막센씨우스가 집권하자 콘스탄띠누스는 군대를 몰아 로마로 진격해 왔고, 10월 28일 로마 근교에 있는 [밀바오 다리]에서 막쎈시우스와 마지막 결전을 겨루게 되었다. 그는 결전을 앞두고 하느님께 기도하였는데 꿈속에서 하늘에 십자가가 나타나고 [너는 이 표시로 승리하리라(hoc signo vinceris)]는 환시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군인들의 방패에 십자표시를 그려넣게 한 다음 전투를 하였더니 대승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로마의 꼴로세움 바로 옆에는 콘스탄띠누스의 아름다운 개선문이 있는데 거기에 이 역사적인 사실이 부조되어 있다.  그는 이듬해인 313년 밀라노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금하는 포교령을 발표하였다.  콘스탄띠누스의 포교령이 종교의 자유를 준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박해로 억제될 수 없을 만큼 많아졌기 때문에 통치자들이 그리스도교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한편 콘스탄띠누스의 어머니는 골고타에 있는 3개의 십자가 중에 예수님이 못박히셨던 십자가를 기적적으로 찾아낸 성녀 헬레나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에 부착되어 있던 명패(INRI 유다인의 왕 나자렛사람 예수)는 로마에 있는 [예루살렘 십자가 성당]에 아직까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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