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알렉산드리아의 교회

 

14.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




14.1. 알렉산드리아의 교회


3세기를 전후하여 교회는 지역적인 교세신장을 하면서 뛰어난 신학자들을 배출하였다.  각 지역교회는 고유한 신학전통 즉 학파를 이루어 발전하게 되기 때문에 학파안의 종적(縱的)인 연관성을 이해 할 필요가 잇다.  그러나 이러한 정적 연관성은 타지역 교회와의 횡적 연관성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이 자기 이름을 따서 나일강 하구와 지중해가 만나는 곳에 세운 도시였다.  이 도시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세 대륙이 만나는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일찍부터 경제와 산업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곳에서는 일찍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였는데, 기원전 2세기에 히브리어를 모르는 유대인들을 위해 구약성서를 희랍어로 번역한 「70인역」(Septuaginta)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70인역을 통해 시작된 구약성서의 히브리사상과의 교류와 조화는 유대인 학자 필로(기원후 50년 사망)에 의해 크게 발전하였다.  이처럼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토양이 이미 되어 있었다.  오랜 전승에 의하면 마르꼬 복음사가가 이곳에 와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선종하였다고 하며, 영지주의자인 바실리데스와 이시도루스 등이 이곳에 자기들의 이단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교회 공동체가 이곳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2세기후반에 판테누스가 교리학교를 세운 후이다.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와 오리게네스가 그의 제자로 이 학교에서 배출되었으며, 이들 역시 대를 이어 이 학교의 교장(校長)이 되어 수많은 훌륭한 후배 신학자들을 배출하였다.  이로서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신학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교회 자체도 총주교좌로 발전되어 동북 아프리카 지역을 지도하였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서를 은유(隱喩)적 방법으로 주석하고, 이교문화를 우호적으로 수용하였다.  「은유적 주석」은 성서의 문자적 의미에 국한하지 않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영적,신비적 의미를 밝혀내는 주석방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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