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치쁘리아누스
20.1. 생애
체칠리우스 치쁘리아누스는 떼르뚤리아누스에 이어 제2대 아프리카 교부이다. 그는 200-210년경 카르타고의 유복한 이교 가정에서 태어 났으며 수사학과 웅변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246년에 신앙에 귀의 하였는데 얼마 안되어 사제품을 받았으며 249년 초에는 카르타고의 주교가 되었다. 258년에 순교하기까지 약10년간의 주교생활은 험난하였지만 교회사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만한 공적을 남겼다. 그가 주교품에 오르자 내심 경쟁자였던 노바뚜스를 중심으로한 일부 노사제들의 반발이 있었다. 그리고 주교로 서품된지 1년도 못되어 데치우스 황제의 혹독한 박해를 겪었으며 박해가 끝나자 카르타고 교회는 배교자들의 처리문제에 대한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는 배교자들이 죽을 위험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오에 상응한 공식적인 참회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펠리치씨무스 부제는 주교의 반대자들을 규합해 배교자들을 쉽게 교회에 받아 드려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주교에게 정면으로 대적하였고 여기에 주교 선출 당시 경쟁자였던 노바뚜스가 가담함으로써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로마 교회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치쁘리아누스는 로마의 꼬르넬리우스 교황과 보조를 맞추면서 반대자들에 대처 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251년에 열린 카르타고 주교회의에서 치쁘리아누스의 설을 공인 함으로써 해결되었다. 252년 아프리카 지역에 혹심한 페스트 전염병이 발생하자 교회는 새로운 박해를 당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 때문에 하늘이 분노하여 전염병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치쁘리아누스는 저서들을 통해 이러한 낭설을 반박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