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 사죄 문제에 관하여.

 

너무 많은 신자들에 대한 고백성사는 사제들에게 지나친 부담이 되고 있으며, 특히 사제의 수가 부족한 지역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콜롬비아 주교단에서는, 만일 가능하다면, 전쟁시와 같은 비상시 외에도 합동 사죄를 더욱 광범위하게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이 문제에 관하여 포고령들 가운데에는 아무런 해답이 없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합동 사죄를 확장시킬 의사가 없지는 않다. 이미 허락이 내린 사실들로 보아 이것은 아주 명백하다. 1944년-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훈령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즉, 사람의 수효가 많다는 그 자체가 합동 사죄를 사용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며, 오직 이 이유는 예를 들어서 신자들이 합동 사죄를 받지 않고서는 오랫동안 영성체를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과 같은 어떤 부수적인 심각한 이유에 의해서 타당화되는 경우에는, 매우 중대한 것일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초기 성교회에서 실천한 것을 검토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사실상 성사들 중에 고백성사처럼 많은 변천을 겪은 성사는 없다.




※ 교의사적 고찰


① 초기교회 성교회에는 처음부터 고백성사가 있었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후 성교회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은 통회뿐이라는 원칙이 지배적이어서 대부분의 크리스챤은 고백성사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신자들은 인간적 나약성을 체험하게되어 모든 크리스챤은 ‘일생에 한 번’ 이 성사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나왔다. 따라서 이 당시의 고해성사는 결국 죽음에 임박해서 받게 되는 ‘병자의 고백 성사’가 일반적이었다.


② 그러나 사목적인 면에서 이러한 일생에 한 번뿐이 고백성사는 신자의 영성체와 관련지어 문제가 발생케 된다. 죄중에 있는 신자가 영성체를 자신의 임종 순간까지 미루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죄중에서의 부적합한 영성체를 묵과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대한 해결책으로 ‘성사받을 원의를 가진이가 진심으로 통회하고 참회한다면, 영성체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허락하에 대축일에 신자들의 영성체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사받을 원의를 겸한 진실한 통회’는 대축일 이전에, 특별히 부활절 이전의 공동 사죄의 본보기가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③ 한편, 7세기 이후로 영국에서 비롯된 것으로서의 새로운 참회 원칙과 개념이 성교회에서 사용되었다. 신자들은 일년에 한 번씩 일반적으로 구세주 대림 시작 때에 고백성사를 받는 관습이 생긴 것이다. 영국에서는 재의 수요일 전날에 고백성사를 받았던 것이며, 따라서 그 날을 고백의 화요일이라고 불렀다. 성목요일은 공적인 속죄자들이 주교에 의하여 사죄를 받고 “화해하는” 화해의 날이었다. 구세주 대림 시초에 자기의 죄를 고백한 신자들도 이 공적 화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진짜 합동 사죄를 해 주었다. 다만 고백을 후에 하기로 했던 것은 사실이다.


④ 10세기부터는 많은 주교들이 합동 사죄를 널리 사용하였으며, 얼마 안되어 사제들도 이런 권한을 받게되었다.


⑤ 11세기에는 이런 합동 사죄가 여러 곳에서 실시되었는데, 주일과 축일에 강론이 끝난 뒤에 합동 사죄를 주었던 것이다.


⑥ 12세기동안에, 즉 스콜라 학파 초기에 어떤 제한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즉, 합동 사죄는 대죄에는 해당되지 않고 다만 소죄와 고백성사때 잊어버리고 고하지 못한 죄 등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사 중의 공동 사죄는 오늘날 미사에도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미사중의 참회 예절 안에는 성사적 효력이 있다는 신학자들의 의견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중한 죄의 경우에는 사제 앞에서의 정식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회 역사 안에서 ‘공동 사죄’란 절대적 혁신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난관이 있다. 개별적 고백 성사에서 이루어지는 사죄를 받도록 요구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초기 교회에서 죄와 죄사이의 구별, 즉 대죄와 소죄에 대하여 명백한 구분을 몰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유일한 방법의 고백 성사라고 할 수 있었던 공적 참회는 원칙적으로 살인, 사음, 배교의 세 가지 대죄에 대해서만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죄의 중대성은 물론 자명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설령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자신의 죄의 경중정도를 스스로 완전히 파악하고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합동 사죄에 뒤따르는 고백에 대하여 의미부여는 충분하다고 본다. 


현재의 사목적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이 연역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성교회는환경에 따라 융통성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만일 어떤 지역에 사제의 수효가 부족해서 신자들에게 고백 성사를 주는데 그들의 힘이 거의 다 소모될 지경이라든지, 또 많은 신자들이 고백 성사를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와 같은 특수한 난관이 있을 때에는, 교회가 트리덴티노 공의회의 원칙을 거절함 없이 그 법을 더욱 널리 적용시킴으로써, 합동 사죄를 허락해주고, 개별 고백을 연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무분별한 확대 적용은 사목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중의 하나이다. 단순히 큰 축제나 순례 때 있을 수 있는 참회자들의 회중이 많다는 이유만으로는 고해사제들이 부족하더라도 충분한 필요로 간주되지 아니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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