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본질
용어의 너무 의미가 넓고 깊어서 전례에 대한 정의를 교회에서는 내리기 어렵다.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렵다. 그래서 교회에서 교부들이라든가, 성서의 말을 인용하면서 전례의 본질을 설명하게 된다.
1.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례와 성서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느님 말씀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전례 안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서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전례 안에서 올바르게 반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지침서인 공의회 문헌중에 전례헌장 7항을 보면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수행으로 간주된다. 전례안에서 인간의 성화는 감각할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나고, 그것은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체, 즉 머리와 지체에 의하여 완전한 공식 흠숭이 수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전례의식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성교회의 행위인 까닭에, 가장 우월적인 거룩한 행위이며, 그 효과에 있어서 성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도 이와 같은 자리 및 같은 비중을 차지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전례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 전례이다. 즉, 전례를 이루시는 주체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전례의 토착화는 예수님의 강생부터 나오는 것이다. 인간이 되셨기에 때문에, 양자의 관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느님이며 인간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 편에서 생각할 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전례 안에서 내려주시는 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오셔서 이룩한 일을 똑같이 ‘재현’(그 당시 일어났던 일들이 전례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이 순간에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하는 가운데 ‘구원, 은총’을 내려 주시는 것이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전례 안에서 인류를 대표해서 하느님께 찬미, 감사, 기도, 제사 등을 올려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전례란 이렇게 주고 내리고 받고 하는 것이 올바르게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의 사이에서 올바른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가 전례 안에서 사제직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즉 사제직이란 하느님말씀을 선포하거나 제사를 거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례의 첫번째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2.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이루어 지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내면적인 외형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일들, 즉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여러 가지 업적들 그것이 전례의 내용이다. 다시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성사와 제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3. 셋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을 성화 시키는 것’이다.
전례의 목적이 있는데,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사람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따라서 전례의 목적도 하느님과 인간의 양자의 관계에서 볼 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을 성화 시키는 것’이 전례이다.
4. 넷째,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 이다.
따라서 이러한 면에서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화란 잘 들으면서 상대방의 말을 듣고 거기에 맞는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사에서도 하느님께서도 말씀하시고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잘 들으려고 애를 써야한다. 따라서 잘 듣고 응답으로서 화답송을 하게 되는 것이다. (층계송 → 응송(응답송) → 화답송) 즉 질문에 대한 대답의 차원이란 뜻에서 쓰던 ‘응송’이 지금은 대화적인 측면에서 용어인 ‘화답송’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대답이 이루어 지기 위해서 화답송의 내용은 1독서와 맞는 주제로 답을 하기 위해서 시편에서 그 의미를 끌어와서 화답송으로 대답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답송을 일반 성가로 대체 할 때에는 적어도 1독서에 맞는 주제를 가진 성가로 해야 대화의 의미가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업적이 전례의 내면적인 외형인데 그러한 구원업적이 아무리 좋은 것이고 거기에 따르는 은총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인간이 그것을 이해할 수 없고 알아들을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진리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에도 즉 겨자씨의 비유, 포도나무의 비유등 그 당시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비유를 들어가면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전례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거룩한 표지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표지는 전례 안에서 그러한 구원의 의미를 드러내 주기 위해서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표지를 통해서 드러내게 된다. 우선 첫 번째 표지는 언어를 말한다. 즉 전례 안에서 말을 통해서 그 의미를 드러내고 전달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제의 기도라든지 성가 등이 그 표지이다. 듣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미사 안에서 본기도, 감사송, 성찬기도 등을 제대로 잘 들을 때 비로소 구원의 업적이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표지는 동작이다. 전례 안에서 미사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동작이 있다. 우선 미사는 성체의 의미인데 즉,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그 의미가 동작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그 동작 자체가 초기에는 미사의 용어로 쓰이기도 하였다. 즉, 그 어떤 예식안에서 어떤 동작 자체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용어로 들어오게 되고, 또 어떤 때에는 기도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 기도 자체가 용어로 들어오게 되기도 했다. 그러한 동작은 사제가 하는 동작으로서 빵을 쪼개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그 앞을 터 주게 된다. 즉 그러한 사제의 동작을 통해서 그것이 담고 있는 구원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도록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세 번째 표지는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물질을 통해서 드러내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세례때에 죄가 씻어 졌다는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물을 사용하며, 기름을 사용하는 것처럼, 미사에서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드러내기 위해 빵과 포도주라는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표지로서 의미가 잘 드러나기 때문에 전례에 임하는 신자들의 근본적인 자세는 첫째,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들어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둘째, 잘 보아야 한다. 셋째, 잘 말해야 한다. 즉, 찬미로써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초세기 유대인들 시대에 세가지의 용어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우선 ‘기억, 기념’이다. 기억한다는 것 (아남네시스(기억)), 즉 어떤 사건에 대한 것을 계속 기억할 수 있도록 말씀들을 봉독 해주고 그리고 그렇게 자주 듣고, 기억하게 되다보면 자동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그렇게 자주, 계속 봉독하고 기억하게되면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이러한 위대한 일을 해 주셨구나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이러한 감사하는 마음들이 마음에서 터져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찬미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례 안에서는 잘 듣고 잘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잘 말해야 한다는 것, 찬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제는 사제대로 평신도는 평신도 나름대로의 전례 안에서 응답이나 환호들을 제대로 할 때 올바른 전례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5. 다섯째,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의 공적인 행동이다.
전례란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의 공적인 행동이다. 사적인 것도 사적으로 할 때에는 근본적인 것은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나쁘다고는 할 수 가 없으나, 전례 안에서 못하는 이유는 공동체의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먼저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란 글자 그대로 몸은 몸인데 신비스럽게 이루어진 몸이다. 즉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세례를 받은 우리들은 그 몸의 지체들이다. 그 지체는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각각 나름대로의 고유한 역할과 의무가 있다. 즉 성직자들은 성직자대로, 수도자들은 수도자대로, 평신도는 평신도 나름대로 고유한 역할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각 지체들이 자기에게 맡겨진 고유한 역할과 의무를 제대로 알고 수행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지체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드리는 공적인 행동인 미사 전례 안에서도 각각 맡겨진 역할 즉, 환호부분, 응답 부분 등을 외칠 때 올바른 전례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