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

 

초대 교회 신자들의 기다림에 비춰 본 우리의 모습




초대 교회 신자들이 지니고 있었던 커다란 특징 중의 하나는 임박해 온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의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초대 교회 신자들은 주님의 지상 생활―출생, 공생활, 수난,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취하시고 이 세상에 첫번째로 오셨다는 것이 아니고 세상 끝날에 영광에 싸여서 두번째로 오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라진 과거가 아니라 약속된 영광스러운 미래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계시를 보증해 주시는 분이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록 22,20). 이 희망에 찬 기대는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재림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기다리는 그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도읍을 가질 수 없으며, 앞으로 다가올 한 도읍을 찾아간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또 자신들은 이 세상에서는 정주할 수 없는 “옮겨 놓여진 사람들”, 즉 순례자들이라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되돌아오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와 같은 신념은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임박해 있는 자신의 죽음을 항상 의식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각자의 죽음은 사실상 이 세상의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우리 자신들에 대한 사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1)






6.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마태16,26)




우리 모두의 ‘나’라는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나’는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며칠 동안은 ‘나’의 죽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신문, 방송 등 여러 전달 매체를 통해서 ‘나’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젊었을 때의 사진들이 신문지상에 또는 활동하던 모습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쳐집니다. 친구들과 친척들이 “마지막 조의”를 표하기 위하여 모여듭니다. 장례식은 끝났습니다. ‘나’의 죽음으로 어수선했던 집안이 차차 정돈되면서 세상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같이 조용해집니다. ‘나’만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자리에 누군가 이름 모를 사람이 들어앉아 일을 계속합니다. 아마 ‘나’ 이상으로 일을 잘 처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면 차차로 ‘나’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명성도, 지위도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을 감추어 버리는 장막과도 같습니다. 죽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던 사람들도, 천만 년을 살겠다고 갖은 보약을 다 먹었던 그들도,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하는 수 없이 따라 나섰습니다. 죽음! 우리는 항상 그것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2)


죽음은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의 해후(邂逅)―영성체를 통하여, 그리고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 안에서 그렇게도 자주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와의 해후―입니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순간이겠습니까! 성녀 데레사는 임종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여, 이제 당신이 확실히 보입니다!” 죽음은 확실하고 피할 수 없는 삶의 사건입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떠나갈 것입니다. 죽을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쳐야만 될 그 날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을 행복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를 게을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죽음이라는 모습은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3)


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기에, 우리의 이 지상에서의 신앙생활이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의 신뢰로,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으로 꽃피울 것을 믿기에, 이를 준비하는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7. 대림절의 참뜻과 우리의 준비




이제 우리는 준비하는 모습 가운데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상의 종말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의 시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교회 전례 안에서 대림절의 참뜻을 지난 강좌 때에 살펴보았습니다.


1) 대림절은 역사적으로 이 세상에 탄생하는 그리스도의 성탄 축일, 첫 번째 오심에 대한 준비입니다.


2) 대림절은 세말에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보속과 속죄 등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이와 같은 대림절을 맞이하는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준비하는 삶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신앙생활과 전례생활, 그리고 실천생활면에서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4)




7.1. 신앙 생활


첫째로 기도와 극기입니다. 대림 시기는 바로 주님의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리며 “너, 시온아. 높은 산에 올라가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너, 예루살렘아. 힘껏 외쳐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질러라. 유다의 모든 도시에 알려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저기 오신다”(이사 40,9)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각 개인의 기도만이 아니라 전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적 기도를 전하며, 당신께 부르짖는 백성에게 빛나는 얼굴을 보여주시고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정의와 평화를 주신다고 합니다.


둘째로 준비해야 할 것은 회개(Metanoia)입니다. 회개는 우리에게서 범죄 행위와 범죄 습성을 제거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육적인 생각, 마음의 자세와 행동의 잘못을 인정하고 근본적인 전향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이 대림절 기간 중에 본당 차원에서의 정기적인 기도 모임이나 공동 참회 예절 등에 적극 참여하여 모든 교우들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연대 의식 속에 몸과 마음을 정리 정돈하여 주님을 기다리기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각자의 희생을 모아 불우한 이웃을 방문하여 구체적으로 나눔의 체험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한 행위입니다.




7.2. 전례 생활


대림절 기간 동안에 교회는 사순절과 마찬가지로 기도, 단식, 자선의 세 가지 행위를 적극 권면해 왔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평소에도 이와 같은 기본적인 행동을 실천해야 하지만, 대림절과 사순절 기간에는 개별적이 아닌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즉 교회 공동체 전체가 공식적으로 이 행위를 공동으로 실천합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림절 기간 중에 미사뿐 아니라 본당 차원에서나 각 단체 별로 갖게 되는 정기적인 기도 모임과 말씀의 전례에 적극 참여하여 전례를 통한 일치를 이루어, 올 그 날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7.3. 실천 생활


성탄 축일을 준비하는 대림절은 우선 극기로서 준비하는 기간이며, 또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쁨을 맛보고 나누는 기간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언뜻 보면 서로 상반되는 것같은 느낌을 줍니다. 즉 극기와 고행으로 생활 속의 즐거움이나 기쁨을 의식적으로 절제해야 하는 요소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설레는 가슴으로 기쁘게 기다리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대림절을 보내는 자세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하여 다음 4가지를 통해 실천을 시작하기를 권고합니다.




① 마음의 순결: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태어나시고, 동정녀로서 주님을 맞이하신 것을 본받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② 겸손: 마리아 막달레나의 겸손과 통회와 뉘우침의 사랑을 본받아서, 예수님의 자비와 전능에 대해 영광을 드리고 겸손되이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③ 신뢰심: 우리가 약하다고 실망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주님께 의탁하며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들의 신뢰심을 본받아 우리도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바라야 합니다.


④ 표현: 우리가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꾸준한 기도와 희생을 하며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생활해야 합니다.




이러한 실천을 위해서는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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