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함과 거룩함”
近墨者黑이라고 했습니다. 먹을 가까이 하는 이는 손이나 옷이 검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까이 하는 것이 시커먼 먹이기 때문입니다.
생선을 쌌던 종이는 당연히 비린내가 날 수 밖에 없고, 향료를 쌌던 종이는 당연히 향기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생선을 쌓던 종이를 옷장 안이나 가방에 넣어둘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온통 비린내로 가득 찰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향기로운 종이는 옷장에 넣어두면 옷들이 그 향기를 가득 머금어서 그 옷을 입을 때 그 향기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내가 만일 생선을 쌌던 종이와 같다면 내 옆에 있는 이들은 비린내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이가 생선을 쌌던 종이와 같다면 내 몸에서는 비린내가 풍길 것입니다. 이렇게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적인 것들은 금방 표시가 나는데, 내적인 것들은 금방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다가간다 할지라도 그것이 탄로가 나지 않는 이상, 상대방은 감지할 수 없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그런 사람인줄은 꿈에도 몰랐는데…,”하면서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적인 것들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를 알면 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양심”에 비추어서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양심에 비추어서 부정함과 거룩함의 갈래 길에서 어디를 향하는지를 볼 수 있을 때, 나는 비린내가 나는 듯한 삶에서 향기가 나는 삶으로 옮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향기 나는 삶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을 숨긴다 할지라도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의 상처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양심에서 벗어난 행위가 결국 그의 삶의 자취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만 인정하지 않지,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은 내가 부정한 사람인지,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십시오.” 그 안에 내가 있습니다. 거룩함을 추구하며 손에 묵주를 들고 기도하고 있는 내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 안에서 기뻐하는 내가 있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십시오.” 그 안에 내가 있습니다. 거룩한 척 하지만 거룩함에서는 너무도 벗어나 있고, 기도하는 척 하지만 실상은 기도하지 않는 내가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책들 중의 한 권으로 책장에 꽂혀 먼지를 잔득 뒤집어 쓰고 있고, 그 말씀의 실천을 부담스러워하는 내가 있습니다.
거울 속에는 있습니다. “부정함과 거룩함이…” 왜냐하면 거울은 그대로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단 양심을 가지고 거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