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의 종교사적 성격

2. 巫俗의 종교사적 성격 


현재 한민족의 다수 보편적 基層인 민간층의 종교는 민간신앙이다. 불교 도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의 외래종교가 들어와 장구한 역사와 더불어 조직적 체계 밑에서 끈질기게 포교활동을 계속하였지만 외래종교는 언제나 한국의 외적 표층의 종교로 머무는 수준이다. 민간신앙은 민간층의 생활 공동체 속에서 자생하여 생활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종교현상이다. 어떤 인위적 목적의식이나 당위성 이전에 이미 민간인의 생활현상이자 종교인 ‘생활 그 자체’인 것이라 생각된다. 동네 입구에 서낭당이 있어 마을을 수호해 주고 집안의 요소마다 家神이 있어서 厄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조상 대대로 전승되어 오는 생활적인 종교적 현상, 그것은 어느 누구의 권유에 의하거나 일부 지방에만 존재하는 특수 현상이 아닌 민간인 누구에게나 있어 왔던 보편적인 민간층의 자연적 사고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전문화한 巫를 중심으로 巫俗이 체계화한 것이다. 


조직적 종교현상으로서의 巫俗에 대한 우리나라 최고의 기록은 삼국 유사에 나오는 신라 제2대 남해 왕건의 것으로 기원후 1세기 초가 되고 불교에 대한 기록은 기원후 4세기가 지나서의 일이다. 한국 巫의 기원은 역사적 배경을 청동기시대로 소급시켜보는 경향이 강하다. 巫俗은 이렇게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아득한 상고대부터 한민족의 종교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 외래종교가 들어온 후로도 민간신앙으로서 한민족의 基層的 종교현상으로 존재하여 왔다. 한편 巫俗은 한국 전통예술의 근원을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巫俗 속의 巫歌 巫樂 巫舞 祭儀 등 미분화된 종교적 원시예술의 종합체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각각 국문학 국악 민속무용 민속극 등의 분야로 분화발전되어 갈 기틀이 된 것이라 생각되므로, 巫俗은 한국 전통 예술 형성의 시원적 기틀의 성격도 겸하게 된다.




제 이절 연구사적 검토




1. 儒學者의 관심(고려 말기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비판적인 태도들)


유학자들의 巫俗에 대한 관심은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고려 말기인 13세기 초엽부터 발견되고, 그 관심은 주로 巫俗을 淫祀라 하여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유학자들의 비판이 연구사적 의의를 갖는 것은 그 비판 과정에서 당시의 巫俗을 비교적 선명하게 기록으로 남긴 귀중한 자료로써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려말 공민왕 때 김자수의 상소문을 통해 別祭라고 말하는 巫祭儀의 성격과 규모, 방식을 전하고 있으며, 특히 고려말 이규보는 老巫篇 詩안에 당시의 巫俗을 상세히 관찰한 보고서를 나기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에는, 1790년경 이규경의 ‘巫覡辨證說’을 꼽을 수 있다. 그의 무격변증설은 巫俗을 비판하는 입장이기는 하나 당시 남무를 화랑과 박사라고 창하는 그 명칭상의 어원적 고증을 수록하고 있으며 특히 최영 장군 신당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였다.


2. 서양 기독교 선교사의 연구


한국 巫俗이 근대과학의 방법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Dallet의 ‘조선 천주교회사’는 서론에서 천연두와 함께 巫俗的 당시 상황을 소개하였으며, 본격적인 연구는 선교사인 Humbert가 ‘The korean Mudang and P’ansu(1903)`라는 제목의 연재를 통해 한국 巫의 성격과 기능, 굿하는 신당, 굿의 종류와 방법, 신관에 걸쳐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1910년에 선교사롤 한국에 온 Underwood는 巫俗을 비교종교학 내지는 민족학적 안목으로 관찰한 결과 巫俗을 신학적 안목에서 비교하여 고대의 그리스도교적 하느님 숭배로 樹木崇拜와 洞神祭를 바라보았다. 끝으로 1929년에 선교사 Clark는 한국의 巫俗을 시베리아의 shamanism과 비교하여 같은 계통으로 연구하였다.


3. 한국학자의 초기 연구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개화기를 통해 신학문을 익힌 한국학자들이 巫俗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후반기부터 이능화, 최남선, 손진태 등이 巫俗을 연구하였는데, 이 시기는 사학자들이 한국고대사 연구방법의 일환으로 역사민속학적 입장에서 巫俗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이능화는 1927년에 ‘조선무속고’를 발표하여 최초의 한국인에 의한 巫俗의 집대성을 이루었다.  


4. 일인학자의 연구


이 시기의 巫俗연구는 일인학자에 의해 식민지 지배의 목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지원에 의해서 연구되었다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종래의 부분적으로 연구되어 오던 巫俗이 중앙관청의 지원 아래 전국적인 현지조사를 통해 집대성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5. 1945년 이후의 연구


1945년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내 학자들은 巫俗을 전통적 기층 문화 현상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시기는 종래까지 외국인에 의해 巫俗이 정책적으로 연구된 것과는 달리 국내 학자에 의해 자국의 巫俗이 순수한 학문적 관심 속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문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종교학 등의 입장에서 다양한 방법론이 동원되고 있다. 이능화 선생의 문헌학적 연구, 손진태 선생의 역사민속학적 연구 이후 다음과 같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현장조사에 주력하여 그 나름대로 현장자료는 정리해 나가고 있으나 이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土俗誌的 계열(민속학, 국문학)과 다음 하나는 처음부터 서양의 명제를 끌고 들어와 그 이론체계에다 巫俗을 대입시키려는 事大的 계열(신학, 종교학, 인류학)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巫俗연구는 巫俗의 현장성이 입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채 어느 한 부분만이 평면적으로 조명되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巫俗은 종교적인 현상임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巫俗은 기성종교와는 다른 복합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巫俗이 기층문화와 종교의 양면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巫俗연구가 巫 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 巫俗을 신봉하는 민간인 巫信徒에 대한 조사연구가 전연 없다는 점이다. 巫俗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巫에 대한 巫信徒의 반응과 민간층의 巫俗 수용도 등이 사회적 측면에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제 삼장 연구방법과 자료


두가지 기본입장 – 먼저 앞의 정의에서 본 바와 같이 巫俗을 민간층의 전승적 종교현상으로 보고, 나아가 연구자가 민간인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종교적 현실을 그들의 생활현장으로부터 살펴 그 巫俗현장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것이다.


제 사장 연구과제


첫 번째 과제는 ‘무엇이 巫俗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巫俗의 그 무엇이 한민족의 심성을 이토록 지배해 오고 있으며. 그 ‘무엇’은 또 어떻게 표현되어 오늘에 巫俗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둘째, 巫俗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原型思考는 어떤 것이며. 무엇이 巫俗의 원형사고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巫俗안에 투영되어 求心을 이루는가. 셋째, 이와 같은 巫俗의 원형사고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민간인의 정신형상-민간상은 어떤 것인가. 이상의 제시된 과제는 巫俗의 근원적 의미로부터 민간상의 탐구로 초점이 이어져 인간의 행동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존재의 根源에 대한 물음으로 일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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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2. 巫俗의 종교사적 성격 

    현재 한민족의 다수 보편적 基層인 민간층의 종교는 민간신앙이다. 불교 도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의 외래종교가 들어와 장구한 역사와 더불어 조직적 체계 밑에서 끈질기게 포교활동을 계속하였지만 외래종교는 언제나 한국의 외적 표층의 종교로 머무는 수준이다. 민간신앙은 민간층의 생활 공동체 속에서 자생하여 생활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종교현상이다. 어떤 인위적 목적의식이나 당위성 이전에 이미 민간인의 생활현상이자 종교인 ‘생활 그 자체’인 것이라 생각된다. 동네 입구에 서낭당이 있어 마을을 수호해 주고 집안의 요소마다 家神이 있어서 厄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조상 대대로 전승되어 오는 생활적인 종교적 현상, 그것은 어느 누구의 권유에 의하거나 일부 지방에만 존재하는 특수 현상이 아닌 민간인 누구에게나 있어 왔던 보편적인 민간층의 자연적 사고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전문화한 巫를 중심으로 巫俗이 체계화한 것이다. 

    조직적 종교현상으로서의 巫俗에 대한 우리나라 최고의 기록은 삼국 유사에 나오는 신라 제2대 남해 왕건의 것으로 기원후 1세기 초가 되고 불교에 대한 기록은 기원후 4세기가 지나서의 일이다. 한국 巫의 기원은 역사적 배경을 청동기시대로 소급시켜보는 경향이 강하다. 巫俗은 이렇게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아득한 상고대부터 한민족의 종교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 외래종교가 들어온 후로도 민간신앙으로서 한민족의 基層的 종교현상으로 존재하여 왔다. 한편 巫俗은 한국 전통예술의 근원을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巫俗 속의 巫歌 巫樂 巫舞 祭儀 등 미분화된 종교적 원시예술의 종합체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각각 국문학 국악 민속무용 민속극 등의 분야로 분화발전되어 갈 기틀이 된 것이라 생각되므로, 巫俗은 한국 전통 예술 형성의 시원적 기틀의 성격도 겸하게 된다.


    제 이절 연구사적 검토


    1. 儒學者의 관심(고려 말기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비판적인 태도들)

    유학자들의 巫俗에 대한 관심은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고려 말기인 13세기 초엽부터 발견되고, 그 관심은 주로 巫俗을 淫祀라 하여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유학자들의 비판이 연구사적 의의를 갖는 것은 그 비판 과정에서 당시의 巫俗을 비교적 선명하게 기록으로 남긴 귀중한 자료로써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려말 공민왕 때 김자수의 상소문을 통해 別祭라고 말하는 巫祭儀의 성격과 규모, 방식을 전하고 있으며, 특히 고려말 이규보는 老巫篇 詩안에 당시의 巫俗을 상세히 관찰한 보고서를 나기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에는, 1790년경 이규경의 ‘巫覡辨證說’을 꼽을 수 있다. 그의 무격변증설은 巫俗을 비판하는 입장이기는 하나 당시 남무를 화랑과 박사라고 창하는 그 명칭상의 어원적 고증을 수록하고 있으며 특히 최영 장군 신당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였다.

    2. 서양 기독교 선교사의 연구

    한국 巫俗이 근대과학의 방법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Dallet의 ‘조선 천주교회사’는 서론에서 천연두와 함께 巫俗的 당시 상황을 소개하였으며, 본격적인 연구는 선교사인 Humbert가 ‘The korean Mudang and P’ansu(1903)`라는 제목의 연재를 통해 한국 巫의 성격과 기능, 굿하는 신당, 굿의 종류와 방법, 신관에 걸쳐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1910년에 선교사롤 한국에 온 Underwood는 巫俗을 비교종교학 내지는 민족학적 안목으로 관찰한 결과 巫俗을 신학적 안목에서 비교하여 고대의 그리스도교적 하느님 숭배로 樹木崇拜와 洞神祭를 바라보았다. 끝으로 1929년에 선교사 Clark는 한국의 巫俗을 시베리아의 shamanism과 비교하여 같은 계통으로 연구하였다.

    3. 한국학자의 초기 연구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개화기를 통해 신학문을 익힌 한국학자들이 巫俗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후반기부터 이능화, 최남선, 손진태 등이 巫俗을 연구하였는데, 이 시기는 사학자들이 한국고대사 연구방법의 일환으로 역사민속학적 입장에서 巫俗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이능화는 1927년에 ‘조선무속고’를 발표하여 최초의 한국인에 의한 巫俗의 집대성을 이루었다.  

    4. 일인학자의 연구

    이 시기의 巫俗연구는 일인학자에 의해 식민지 지배의 목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지원에 의해서 연구되었다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종래의 부분적으로 연구되어 오던 巫俗이 중앙관청의 지원 아래 전국적인 현지조사를 통해 집대성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5. 1945년 이후의 연구

    1945년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내 학자들은 巫俗을 전통적 기층 문화 현상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시기는 종래까지 외국인에 의해 巫俗이 정책적으로 연구된 것과는 달리 국내 학자에 의해 자국의 巫俗이 순수한 학문적 관심 속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문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종교학 등의 입장에서 다양한 방법론이 동원되고 있다. 이능화 선생의 문헌학적 연구, 손진태 선생의 역사민속학적 연구 이후 다음과 같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현장조사에 주력하여 그 나름대로 현장자료는 정리해 나가고 있으나 이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土俗誌的 계열(민속학, 국문학)과 다음 하나는 처음부터 서양의 명제를 끌고 들어와 그 이론체계에다 巫俗을 대입시키려는 事大的 계열(신학, 종교학, 인류학)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巫俗연구는 巫俗의 현장성이 입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채 어느 한 부분만이 평면적으로 조명되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巫俗은 종교적인 현상임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巫俗은 기성종교와는 다른 복합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巫俗이 기층문화와 종교의 양면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巫俗연구가 巫 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 巫俗을 신봉하는 민간인 巫信徒에 대한 조사연구가 전연 없다는 점이다. 巫俗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巫에 대한 巫信徒의 반응과 민간층의 巫俗 수용도 등이 사회적 측면에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제 삼장 연구방법과 자료

    두가지 기본입장 – 먼저 앞의 정의에서 본 바와 같이 巫俗을 민간층의 전승적 종교현상으로 보고, 나아가 연구자가 민간인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종교적 현실을 그들의 생활현장으로부터 살펴 그 巫俗현장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것이다.

    제 사장 연구과제

    첫 번째 과제는 ‘무엇이 巫俗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巫俗의 그 무엇이 한민족의 심성을 이토록 지배해 오고 있으며. 그 ‘무엇’은 또 어떻게 표현되어 오늘에 巫俗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둘째, 巫俗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原型思考는 어떤 것이며. 무엇이 巫俗의 원형사고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巫俗안에 투영되어 求心을 이루는가. 셋째, 이와 같은 巫俗의 원형사고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민간인의 정신형상-민간상은 어떤 것인가. 이상의 제시된 과제는 巫俗의 근원적 의미로부터 민간상의 탐구로 초점이 이어져 인간의 행동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존재의 根源에 대한 물음으로 일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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