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북부지역의 무속
북부지역은 주로 관서(평안남북도), 관북(함경남북도) 지방인데, 북한지역인 관계로 직접 답사하지는 못하고 월남하여 서울에서 무업에 종사하고 있는 女巫의 무속사례를 통하여 북부지역의 무속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무속사례Ⅶ(평안남도 평양시)
†조사일자 1973-76
†무의 신상
성명 : 정 대복
별명 : 다마네기 만신
본적 : 평안남도 평양시 신창시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260-25
연령 : 61세
성별 : 여
직업 : 무업
교육 : 초등학교 졸
생활정도 : 중하
신장 : 145센티
인상 : 키가 작고 배가 볼록나왔으며 말이 많은 편으로 떠벌인다.
1. 성무과정
1) 강신체험
정 여인은 평양 태생으로 18세 때 21세된 이 모씨와 결혼하였으나 결혼 초부터 남편이 싫어서 한 방에 드는 것이 징그러워졌다. 남편과의 잠자리가 참을 수 없도록 징그럽고 추하게 여겨지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남매를 두게 되었다. 23세가 되는 어느 날 밤 꿈에 하늘에서 커다란 용이 내려와 정씨의 몸을 감고 하늘로 올라가자고 하였다. 정씨는 용이 하자는 대로 용의 꼬리를 잡고 하늘로 올라가려는데, 얼마못가 땅에 떨어졌다. 매달리고 떨어지고를 계속 반복하였다. 이런일이 있은 후 꿈에 용이 자주 보이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더욱 징그러워져서 보기조차도 싫어 할 수 없이 23세때 남편과 이혼하고 말았다. 몸이 아픈 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밥을 전혀 먹지 못하고 냉수만 마셨으며 항문에서 피가 계속났고, 몸이 맥을 출 수가 없었다. 이런 신체증상과 용의 꿈이 10년간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가 33세 되던 해 전문적인 무당은 아니었지만 집에 크게 신당을 짓고 무신을 모셨던 외할머니가 죽고 난 15일 후 정씨는 저절로 말문이 열려 “옥황상제 일월성신이다”라고 소리쳤다. 정씨는 이것을 외할머니가 모시던 무신이 자신에게 대를 물려 내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몸이 아픈 증상이 차츰 낫기 시작했다.
2) 무의 학습
정씨는 말문이 열린 뒤로 무당이 되어 굿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평양 무당 이 춘옥을 따라 다니며 그를 스승으로 삼고 굿을 배웠다, 무술을 배우는 방법은 선생무가 굿을 하는 것을 보고 들으며 처음에는 제금을 치고, 다음 꽹가리를 쳤으며, 나중에 장고를 치는 순으로 무악 반주의 조역인 조무로부터 굿을 익혀갔다. 그러다가 33세 때의 겨울에 무복을 입고 처음 굿을 하게 되었는데, 이굿은 타살굿 한 거리였다. 곧이어 선생무가 내림굿을 해주고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약 28년간 무로 독립하여 왔다. 무씨의 굿은 평양식이기에 월남한 평안도 사람들만이 찾아왔다. 함경도 월남민들은 마찬가지로 함경도 무당을 찾는다.
2. 신단 및 무구
1) 신단
정씨 집의 신단은 대청 건너방 벽 3면에 좌측 벽으로부터 각각 크기 110센티 가로 60센티이며 적, 청, 황의 원색 당채를 써서 단조롭게 신의 형상이 표현된 천신대감, 부처님, 칠성, 옥황, 일월성신, 본산신령, 삼각산 신령, 경주 김씨 장군, 김 응단 장군, 외인대감, 대신할머니, 서낭님, 창부님, 안도산, 밖도산님 이렇게 15위의 무신위가 걸려 있다. 이 무신위는 신의 신체라 믿어지기에 손을 댈 수 없고 부득이 손을 대야할 경우에는 제를 올리며 사유를 고한 후에 손을 댄다. 그리고 그 밑에 방바닥으로부터 1미터 높이, 폭 40센티의 선반이 둘려 있으며, 이 선반 밑에는 붉은 색의 인조견이 둘려 있고, 그 선반위에 부채, 방울, 창(삼지창), 검(언월도) 등이 있어서 서울 지역 무가 신단과 같은 형태다. 이 신단방은 신성한 성소로 여겨져 신에 관계된 일 이외에는 출입을 삼간다. 정씨는 매일 일어나는 즉시 신단에 옥수를 올리고 각 신위마다 절을 하며 무신이 정씨의 신변을 더욱 보살펴주고 일깨워 달라는 간단한 기도를 올린다.
2) 무복
무복은 무가 굿을 할 때 무신을 상징한다. 정씨가 갖고 있는 무복은 칠성옷, 신령님옷, 장군옷, 대신옷, 대감옷, 관복, 사신군복, 중국장군복, 창부옷, 애기씨옷, 도령옷, 외인대감옷 해서 12벌이다. 무복은 신복이기에 더러워도 물에 빨아서는 안되고 오래되어 새로 만들어야 할 경우에는 불에 태운다.
3) 무악기
굿을 할 때 반주하는 무악기는 장고, 제금(바라), 꽹가리를 사용한다. 장고는 테의 직경 48센티 전장 75센티로 일반적 중부지역의 장고에 비해 테가 굵고 높은 편이며, 제금과 꽹가리는 각각 직경 30, 22센티로 중부지역의 것과 같은 크기다. 이 중 장고가 중심이 되는 악기이며 중부나 남부같이 피리, 젓대, 채금 등의 악기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런점으로 평안도 지역의 무악기는 타악기만으로 반주되어 단조롭다.
4) 기타 무구
굿에 사용되는 방울, 부채, 창, 검, 대신칼, 작도가 있다. 방울은 무가 굿할 때 제신용으로 손에 드는 것인데, 크기와 형태는 서울것과 같다. 부채는 굿할 때 무가 손에 들고 춤을 추거나 신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 반경 21센티의 도령부채와 28센티의 원형인 감응부채의 두가지가 있다. 감응부채는 손에 들지 않고 중심이 되는 굿상 중앙에 세워둔다. 창과 검은 굿할 때 무가 장군신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손에 드는 것으로 크기는 앞에서 본 서울의 삼지창, 언월도와 같다. 대신칼은 선장 46센티(나무자루 16센티), 폭 3센티의 쇠칼 2개 1벌로 무가 굿할 때 잡귀를 위협하는데에 사용된다. 작도는 장군굿에서 무가 맨발로 올라타고 춤을 춘다. 작도를 타는 것은 장군신의 무력적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다. 작도의 크기와 형태는 길이 52센티, 넓이 13센티의 작도로 2개를 11센티 간격으로 나란히 양머리를 쇠를 대고 고정시킨 것이다.

제3절 북부지역의 무속
북부지역은 주로 관서(평안남북도), 관북(함경남북도) 지방인데, 북한지역인 관계로 직접 답사하지는 못하고 월남하여 서울에서 무업에 종사하고 있는 女巫의 무속사례를 통하여 북부지역의 무속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무속사례Ⅶ(평안남도 평양시)
†조사일자 1973-76
†무의 신상
성명 : 정 대복
별명 : 다마네기 만신
본적 : 평안남도 평양시 신창시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260-25
연령 : 61세
성별 : 여
직업 : 무업
교육 : 초등학교 졸
생활정도 : 중하
신장 : 145센티
인상 : 키가 작고 배가 볼록나왔으며 말이 많은 편으로 떠벌인다.
1. 성무과정
1) 강신체험
정 여인은 평양 태생으로 18세 때 21세된 이 모씨와 결혼하였으나 결혼 초부터 남편이 싫어서 한 방에 드는 것이 징그러워졌다. 남편과의 잠자리가 참을 수 없도록 징그럽고 추하게 여겨지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남매를 두게 되었다. 23세가 되는 어느 날 밤 꿈에 하늘에서 커다란 용이 내려와 정씨의 몸을 감고 하늘로 올라가자고 하였다. 정씨는 용이 하자는 대로 용의 꼬리를 잡고 하늘로 올라가려는데, 얼마못가 땅에 떨어졌다. 매달리고 떨어지고를 계속 반복하였다. 이런일이 있은 후 꿈에 용이 자주 보이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더욱 징그러워져서 보기조차도 싫어 할 수 없이 23세때 남편과 이혼하고 말았다. 몸이 아픈 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밥을 전혀 먹지 못하고 냉수만 마셨으며 항문에서 피가 계속났고, 몸이 맥을 출 수가 없었다. 이런 신체증상과 용의 꿈이 10년간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가 33세 되던 해 전문적인 무당은 아니었지만 집에 크게 신당을 짓고 무신을 모셨던 외할머니가 죽고 난 15일 후 정씨는 저절로 말문이 열려 “옥황상제 일월성신이다”라고 소리쳤다. 정씨는 이것을 외할머니가 모시던 무신이 자신에게 대를 물려 내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몸이 아픈 증상이 차츰 낫기 시작했다.
2) 무의 학습
정씨는 말문이 열린 뒤로 무당이 되어 굿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평양 무당 이 춘옥을 따라 다니며 그를 스승으로 삼고 굿을 배웠다, 무술을 배우는 방법은 선생무가 굿을 하는 것을 보고 들으며 처음에는 제금을 치고, 다음 꽹가리를 쳤으며, 나중에 장고를 치는 순으로 무악 반주의 조역인 조무로부터 굿을 익혀갔다. 그러다가 33세 때의 겨울에 무복을 입고 처음 굿을 하게 되었는데, 이굿은 타살굿 한 거리였다. 곧이어 선생무가 내림굿을 해주고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약 28년간 무로 독립하여 왔다. 무씨의 굿은 평양식이기에 월남한 평안도 사람들만이 찾아왔다. 함경도 월남민들은 마찬가지로 함경도 무당을 찾는다.
2. 신단 및 무구
1) 신단
정씨 집의 신단은 대청 건너방 벽 3면에 좌측 벽으로부터 각각 크기 110센티 가로 60센티이며 적, 청, 황의 원색 당채를 써서 단조롭게 신의 형상이 표현된 천신대감, 부처님, 칠성, 옥황, 일월성신, 본산신령, 삼각산 신령, 경주 김씨 장군, 김 응단 장군, 외인대감, 대신할머니, 서낭님, 창부님, 안도산, 밖도산님 이렇게 15위의 무신위가 걸려 있다. 이 무신위는 신의 신체라 믿어지기에 손을 댈 수 없고 부득이 손을 대야할 경우에는 제를 올리며 사유를 고한 후에 손을 댄다. 그리고 그 밑에 방바닥으로부터 1미터 높이, 폭 40센티의 선반이 둘려 있으며, 이 선반 밑에는 붉은 색의 인조견이 둘려 있고, 그 선반위에 부채, 방울, 창(삼지창), 검(언월도) 등이 있어서 서울 지역 무가 신단과 같은 형태다. 이 신단방은 신성한 성소로 여겨져 신에 관계된 일 이외에는 출입을 삼간다. 정씨는 매일 일어나는 즉시 신단에 옥수를 올리고 각 신위마다 절을 하며 무신이 정씨의 신변을 더욱 보살펴주고 일깨워 달라는 간단한 기도를 올린다.
2) 무복
무복은 무가 굿을 할 때 무신을 상징한다. 정씨가 갖고 있는 무복은 칠성옷, 신령님옷, 장군옷, 대신옷, 대감옷, 관복, 사신군복, 중국장군복, 창부옷, 애기씨옷, 도령옷, 외인대감옷 해서 12벌이다. 무복은 신복이기에 더러워도 물에 빨아서는 안되고 오래되어 새로 만들어야 할 경우에는 불에 태운다.
3) 무악기
굿을 할 때 반주하는 무악기는 장고, 제금(바라), 꽹가리를 사용한다. 장고는 테의 직경 48센티 전장 75센티로 일반적 중부지역의 장고에 비해 테가 굵고 높은 편이며, 제금과 꽹가리는 각각 직경 30, 22센티로 중부지역의 것과 같은 크기다. 이 중 장고가 중심이 되는 악기이며 중부나 남부같이 피리, 젓대, 채금 등의 악기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런점으로 평안도 지역의 무악기는 타악기만으로 반주되어 단조롭다.
4) 기타 무구
굿에 사용되는 방울, 부채, 창, 검, 대신칼, 작도가 있다. 방울은 무가 굿할 때 제신용으로 손에 드는 것인데, 크기와 형태는 서울것과 같다. 부채는 굿할 때 무가 손에 들고 춤을 추거나 신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 반경 21센티의 도령부채와 28센티의 원형인 감응부채의 두가지가 있다. 감응부채는 손에 들지 않고 중심이 되는 굿상 중앙에 세워둔다. 창과 검은 굿할 때 무가 장군신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손에 드는 것으로 크기는 앞에서 본 서울의 삼지창, 언월도와 같다. 대신칼은 선장 46센티(나무자루 16센티), 폭 3센티의 쇠칼 2개 1벌로 무가 굿할 때 잡귀를 위협하는데에 사용된다. 작도는 장군굿에서 무가 맨발로 올라타고 춤을 춘다. 작도를 타는 것은 장군신의 무력적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다. 작도의 크기와 형태는 길이 52센티, 넓이 13센티의 작도로 2개를 11센티 간격으로 나란히 양머리를 쇠를 대고 고정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