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사회단체

제3절 무의 사회단체(社會團體)


무의 사회단체는 무당들의 공동 이익을 목적으로 결성된 전국적인 규모의 사회단체이다. 이 사회단체는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官의 인가를 받은 공적 사회단체라는 특성을 지닌다. 즉 무당들의 神系組織이나 단골組織이 무당들 스스로의 사적이고 자연적 조직체라면, 이 사회단체는 관의 인가를 받은 공적이고 인위적 조직력을 갖는 단체이다. 


조직적인 무의 사회단체의 기원은 적어도 구한말 이전으로 추정되며, 대표적인 조직단체로는 전남의 장흥신청, 나주신청, 경기도 수원의 경기재인청, 서울 근교였던 노량진의 풍류방, 제주도의 심방청, 함북의 스승청이 있었으며, 주로 巫夫(무부)인 巫樂伴奏者(무악반주자),「고인」,「재비」들이 단합하여, 선배의 영혼을 제사하면서 그들 스스로의 기강을 확립하고 상부상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이들 신청에는「先生案」이라 부르는 책자가 있었는데, 이것은 역대의 무부 이름과 신청의 훈서나 규약문을 담고있다. 이와 같은「先生案」을 모셔 놓고 각 신청에서는 봄(3월3일) 가을(9월9일)로 무부의 영혼들에게 제사하였다. 이들 신청의 특성은 무부인 「고인」,「재비」들이 결합하여 그들의 선배 영혼을 추모하며, 친목을 위한 계를 조직해서 단합하여 스스로 기강을 세운 자생적 자치단체라는 점이다. 또한 이 단체는 중앙조직에 의한 전국적인 조직이 아니고, 무의 친목을 위하여 지역별로 조직된 자생적 단체이다.


이상과 같은 신청의 단체조직과는 달리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는 무의 조합조직이 1920년 6월1일 김재현등에 의해「崇神人組合」이란 명칭으로 발족되었다. 숭신인조합은 서울에 본부를 두고 각 지방에 지부를 둔 전국적인 조직이었는데, 설립 목적이 무속의 병폐를 스스로 정화하는 것으로 일본관청의 허가를 얻고 조합 운영비로 각 무들로부터 일정액의 조합비를 받았다. 1922년에는 「神理宗敎」라는 무의 단체가 윤조성에 의해 설립되어 단군과 天照大神을 숭배했고, 이후 矯正會, 성화교, 영신회, 西鮮신도동지회, 황조경신숭신회등 무의 단체조직이 생겨났다.


이런 무의 사회단체가 생겨난 시기는 1920년~1931년 사이로 이들 단체는 일본의 관청에 영합하여 무속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인가를 얻어 조합비조로 회비도 거두었다. 


해방후에 생긴 무의 사회단체는「東道敎 華城敎會」․「대한정도회」․「단군숭령회」․「대한승공경신연합회」가 있다.


동도교 화성교회 – 1964년 12월에 승동선(管道師)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수원에 본부를 두고 단군과 조상을 숭배하는 무, 법사 관상가 등의 예배신앙을 목적으로 발족하여 매월 1일과 15일을 예배일로 정하고, 도무사, 총무부, 재무부, 조직부, 사업부, 교화부, 감찰부, 부녀부의 6부를 두고 각 도시에 지부를 두었다.


대한정도회 – 1965년 허갑(鉀)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무당 회원이 6만명에 이른다. 설립목적은 무속과 잡신(雜神)신앙을 정화시켜 민족신앙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었으며, 이 단체는 그 전에 있었던 대한정신교도회를 1966년 해체, 합병하여 사단법인으로 출범했다. 당시 입회비 100원과 월회비 50원을 징수하였다.


단군숭령회 – 1967년 서울에서 발족하여 전국에 지부를 두었으며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였다.


대한승공경신연합회 – 1970년 10월13일 손명진(明珍)을 회장으로 발족했다. 1971년 1월6일 사단법인으로 등록했으며, 동년 3월30일에 기관지인 경신회보(3만부)를 발행하였다. 본부는 서울이며 전국에 89개의 지부를 두고 있으며 회원수는 5만명에 이른다. 설립목적은 무속을 통일된 민족신앙으로 정화하고 무당들에게 반공정신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이상으로 보아, 무의 사회단체는 조선 말기 각 지방의 신청, 일제때인 1920년대에 관의 인가를 얻어 생겨난 무의 조합, 그리고 1960년대부터 사단법인체로 관의 인가를 받은 무의 사회단체로 구분되는데, 조선 말기의 신청들은 무의 조영(祖靈)숭배와 친목(親睦), 그리고 자발적인 기강 확립을 위한 자생적 친목단체로 볼수 있고, 1920년대부터 생겨난 조합과 1960년대 이후에 생겨난 법인체의 단체들은 신청과는 달리, 외적 규제에 의한 무속의 정화라는 제약(制約)을 띤 단체로 볼수 있다.


나오면서


지금까지 무의 신계조직, 단골조직, 사회단체의 3개 집단조직을 알아보았다.


신계조직은 신통(神統)을 중심으로 한 강신무들의 굿패집단이고, 단골조직은 사제권의 혈통을 중심으로 한 세습무의 굿패집단이다. 신계조직이 지역사회 안에서 신통중심으로 유동적이고 사조직적 성격의 무인데 비해, 단골조직은 단골판 지역사회 안에서 혈통에 의한 사제권의 계승으로 정착적인 공조직적 성격의 무로 볼 수 있다. 무의 사회단체인 조선 말기 각 지방의 신청은 무 상호간의 친목과 巫祖崇拜, 자체 기강확립, 계조직 등으로 자생적 자치단체의 성격을 띤 집단조직이었으며, 1920년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합형식으로 결성된 무 단체는 무 자신들에 의한 집단이라기 보다는 무 이외의 인사들이 관으로부터 인가를 얻어 무속을 정화시킨다는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였다. 이 단체들은 관에서 무속을 제지하자, 무속을 정화시킨다는 목적으로 무를 회원으로 입회시키고 통일된 민족신앙으로 선도하려고 노력해왔지만 한번도 실효를 거둔 단체는 없었다. 그 이유는 무당 자신들의 자질부족과 이권문제로 인한 분열 그리고 회비로 인한 무들의 비협조등이다.


이상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무당들은 개별적으로 분산되지 않고 어떤 형식으로든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며, 해방후에 생긴 무의 사단법인체들은 선거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앞에서 본 무의 신계조직, 단골조직, 신청이 자생적 집단조직인데 비해 1920년대로부터 생겨난 조합형식의 사회단체들은 타율적 집단조직으로 볼 수있다. 


이들 무의 집단은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그것이 횡적(橫的)으로 결속되어가는 사회적 조직체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와 같은 무의 조직이 부분적 하조직에서 머물러, 통일된 집약체가 되지 못했던 데에는 일찍이 외래종교를 국교로 한 삼국의 불교정책, 조선의 유교정책에 의한 탄압으로 인해 무속이 지반을 굳혀갈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또 해방후 1960년대에 전국적 규모의 조합형식으로 발족된 무의 사회단체가 있지만, 이 역시 관(官)의 무속 타파를 무마하고 무속을 자체적으로 정화시킨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어서 무의 집약된 횡적조직의 종교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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