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의 거짓말

네 가지의 거짓말




 에덴에서 아담고 이브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


 뱀으로 가장한 사탄의 기만에 속아 하느님의 축복을 빼앗겻던 최초의 한 사람 아담에게서 부터 이 세상 역사가 끝나는 그 날까지 되풀이될 거짓말이 오늘의 뉴에이저들로부터 속삭여 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보암지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대단히 탐스럽기도 했던 생명나무의 열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느님은 엄히 말씀하셨건만 “죽을까 하노라.”로 바꿔 사탄과 한 통속이 되어버렸던 그 날의 비극적인 사건.




 첫번째 거짓말.




 너희가 하느님과 같이 되리라.




 사탄은 아담과 이브에게 하나님과 겨룰만한 왕국을 이룩 할 수 있다고 야속했다. 즉 사탄이 의도 했던 것은 하느님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을 제거하고 인간 자신이 그 자리를 메꾸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가공할만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창조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자신이 하느님이 된다는 거짓말이 인간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만물이 신이고 신은 곧 만물이다.”라는 ‘범신론’이 오히려 호소력이 있었던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의 핵심이 되는 범신론은 고대 힌두교 사상이다.




 두번째 거짓말.




 너희가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사탄이 불복종의 두려움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두번째 기만이다. 죽음이란 모든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이다. 무신론자 조차도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로의 전이를 두려워 한다.


 그것은 죽음에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자신의 두번째 거짓말을 정당한 구실을 찾아야 했고 그것은 바로 ‘윤회설’이었다. 윤회론의 핵심 내용은 “그렇다. 당신의 육체는 죽는다. 그러나 당신은 또 다른 육체안에서 삶을 계속한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다. 자아의 본질 자체는 변함없이 껍데기에 불과한 육신은 바꾸는 것이 곧 죽음인데 그것을 왜 두려워 하는가! 당신이 심판 받아야 할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러한 내용은 불교로 이어져 카르마(Karma) 즉 ‘업’으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죽음의 공포는 인간의 뇌리 속에서 확실히 제거되며, 오히려 환영받기 까지 한다.




 세번째 거짓말




 너희가 선악을 알리라.




 사탄은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더냐?”라고 묻는다. 그는 이브에게 하느님의 선하심을 회의케 하려는 것이다. 계속해서 그는 그들이 그 열매를 먹는다면 선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유혹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선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바로 사탄의 상대론(상황윤리)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상대론이란 나에게 옳은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남에게도 선은 아닌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상황이 도덕(윤리)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선악을 분별하기 위해 하느님께 자문을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선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마음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뉴에이저들은 선악에 관하여 터무니 없는 논리를 펴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선이되고 선이 곧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악 자체도 역시 선이 되어야만 한다.”




 네번째 거짓말




 너희의 눈이 밝아지리라.




 에덴 동산에서 이브가 사탄의 대화는 사탄이 이브의 의심을 자극하는데 부터 시작된다. 하느님께 대한 이브의 배반에 의해 하느님이 차지하던 공간은 무엇으로 대체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물질적인 욕망이었다. 그에 관하여 성경은 이처럼 묘사하고 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니 먹음 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 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 주니 그도 먹은지라.”


 이브가 그 나무를 보았을 때 그것은 그녀의 눈에 좋아보였고, 그녀는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열매를 먹었다. 사탄은 그녀의 눈이 열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녀는 불복종의 문명을 경험토록 했던 것이다. 그녀의 불복종은 문명을 경험토록 했던 것이다. 그 불복종의 모토는 “욕망대로 행하라.”는 것이었다.


 고대 밀교의 교리는 뉴에이지 운동의 필수사항이다. 밀교에서는 “인간 의식의 전환”을 매우 중시했다. 밀교주의자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비밀로 되어 있는 특별한 지식을 자신들만이 알고 있다고 믿었고 지식의 확대와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영적인 전환이었다. 뉴에이저들은 보편적인 신학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 경험이며, 신이라고 불리는 어떤 강력한 힘과의 합일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성도 필요치 않다. 궁극적인 실체와의 접촉을 통해 이성은 사라지고  무분별이 인간을 지배하여 “생각하지 말고 느낀대로 하라 ”고 명령한다.


 지금까지의 4가지 거짓말을 나열해 보면 첫째 너희가 하느님과 같이되리라.(범신론), 둘째 너희가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윤회론), 셋째 너희가 선악을 알리라.(범신론), 넷째 너희의 눈이 밝아지리라. (밀교주의)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조합해 볼 대 이 4가지 거짓말은 이 땅에서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죽은 후에는 저주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 글은 제 나름대로의 견해와 자료를 수집하여 편집한 글입니다. 다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양해 있으시길 바랍니다.


 이글에는 기독교의 성경말씀과 사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실 뉴에지 운동은 반성경적 운동이라 기독교에선는 사실 오래전 부터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 신자의 대부분은 별의미없이 지나치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글을 올리는 바입니다. 지금 교회(기독교)에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심각한 현실입니다. 이글을 읽어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글에 나오는 노래 가사나 이글에 실린 내용보다도 더 많은 뉴에이지 사상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 뉴에이지 사상들은 이미 기독교 중고등부 이상의 신자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카톨릭 중고등부 아니 청년부에서도 모르는 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카톨릭신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더 뉴에이지의 손길이 뻗쳐있지만 우리는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카톨릭 신자로서 그냥 모른체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글을 아직 뉴에지가 무엇인지 잘모르시는 모든 분들에게 올리는 바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타종교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